남의 눈치 안보고 자기 잇속만 차리는 사람을 두고 우리는 흔히 얌체라고 한다. 인간사회의 얌체족이 선량하고 순박한 사람을 속여먹듯이 뻐꾸기는 남의 둥지에 알을 낳아 멍청한 박새가 한 계절 내내 헛고생하게 만드는 새 나라의 얌체다. 나무나라 제일 얌체는 누구일까? 나무의 생태를 조금 아는 이라면 오래 생각할 것 없이 겨우살이라고 할 것이다.
겨우 겨우 간신히 살아간다 하여 겨우살이, 겨울에도 푸르므로 겨울살이가 겨우살이로 되었다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한자로 동청(凍靑)이라고 하니 겨울살이에서 유래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주로 참나무 종류의 큰 나무 위 높다란 가지에 붙어 자라는 '나무 위의 작은 나무'로서 멀리서 보면 영락없는 까치집이다. 모양은 풀 같지만 겨울에 어미나무의 잎이 다 떨어져도 혼자 진한 초록빛을 자랑하는 늘푸른 나무로 분류된다. 가을이면 굵은 콩알만한 노오란 열매가 달린다. 가을 햇살에 비치는 열매는 영롱한 수정처럼 아름답다.
열매는 속에 파란 씨앗이 들어있고 끈적끈적하며 말랑말랑한 육질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어서 산새 들새가 숨넘어가게 좋아하는 먹이다. 배불리 열매를 따먹은 산새가 다른 나뭇가지에 앉아서 콧노래와 함께 '실례'을 하면 육질의 일부와 씨앗은 소화되지 않고 그대로 배설된다. 마르면서 마치 방수성 접착제로 붙여놓은 것처럼 단단하게 가지에 고정되어 있다. 비가 오나 눈이오나 끄떡도 없이 씨앗을 보관할 수 있는 철저한 얌체 유전자 설계를 해둔 것이다. 알맞은 환경이 되면 싹이 트고 뿌리가 돋아나면서 나무껍질을 뚫고 살 속을 파고 들어가 어미나무의 수분과 필수 영양소를 빨아먹고 산다.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었던지 잎에서는 상당한 양의 광합성을 하여 모자라는 영양분을 보충해가면서 삶의 여유를 즐긴다.
사시사철 놀아도 물 걱정 양식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새찬 겨울바람이 아무리 몰아쳐도 겨우살이는 흔들흔들 그네 타는 어린이처럼 마냥 즐겁다. 땅에다 뿌리를 박고 다른 나무들과 필사적인 경쟁을 하는 어미나무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분통 터질 노릇이다. 뽑아내 버릴 수도 어디다 하소연 할 아무런 수단이 없으니 고스란히 당하고도 운명처럼 살아간다.
우리나라에서는 특별히 주술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나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크리스마스 축하파티가 열리는 방문간에 걸어 놓고 이 아래를 지나가면 행운이 온다고 생각한다. 또 마력과 병을 치료하는 약효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믿었으며 겨우살이가 붙은 나무 밑에서 입맞춤을 하면 반드시 결혼을 하게된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전국 어디에나 자라며 가지는 Y자처럼 두 갈래로 계속 갈라지고 끝에 두개의 잎이 마주나기하며 가지는 둥글고 황록색이다. 키가 1m에 이르기도 하나 대체로 50-60cm 정도로서 가지가 얼기설기 뻗어 까치집 모양을 한다. 잎은 피뢰침처럼 생겼고 진한 초록빛으로 도톰하고 육질이 많으나 다른 상록수처럼 윤기가 자르르 하지는 않다. 꽃은 암수 딴 나무로 이른봄 가지 끝에 연한 황색의 작은 꽃이 핀다.
겨우살이 종류에는 이외에도 남쪽 섬의 동백나무에 주로 기생하는 동백나무겨우살이를 비롯하여 전국 어디에나 자라는 꼬리겨우살이 등이 있다. 겨우살이 종류는 모두 약제로 쓰였으나 뽕나무에 기생하는 꼬리겨우살이를 상상기생(桑上寄生)이라 하여 특히 귀중한 약제로 이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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