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바람에 귓불이 간지럽게 느껴질 즈음이면 겨우내 꽁꽁 얼었던 대지는 살짝 봄향기를 풍긴다. 먼 산에 아지랑이가 가물거리고 실개천의 얼음장 밑으로 졸졸졸 시냇물 소리가 조금씩 커지기 시작하면 냇가 양지녘에는 보송보송 귀여운 털 꽁지를 조랑조랑 매다는 녀석들이 있다. 은색의 하얀 털이 저녁 노을에 반짝이기라도 할라치면 봄의 개울가는 요정들의 잔치터 같다. 이들이 바로 버들강아지 혹은 버들개지라 부르는 갯버들의 꽃, 봄의 전령들이다. 산 속의 생강나무, 들판의 산수유가 아직 노란 꽃잎을 선도 뵈기 전부터 설쳐대는 부지런함 덕분에 오늘날 여기저기에 살아 남을 수 있었나 보다. 요즈음은 꽃꽂이 여인의 손끝에서 삭막한 아파트 안방으로 봄 향기를 전해주기도 한다.
강가의 물이 들락거리는 '개'에 잘 자란다하여 개의 버들이 갯버들이 되었다. 이름 그대로 강이나 개울가를 비롯한 습지를 좋아한다. 아예 물 속에서도 숨막히지 않고 생명을 이어간다. 많은 가지가 올라와 커다란 포기를 만들고 평생을 자라도 사람 키를 넘기기가 어려운 땅딸보나무다.
초봄에 막 자란 어린 가지는 연한 초록색을 띠고 있으며 자세히 보면 황록색의 털이 나 있다. 차츰 짙은 녹색으로 변하고 털도 없어진다. 잎은 길다란 피뢰침 모양이고 뾰족한 잎들이 어긋나게 가지에 달린다. 뒷면에는 부드러운 털이 덮여서 하얗게 보인다. 버들강아지 속에 들어있던 깨알같은 씨는 성긴 솜털을 달고 다른 버드나무처럼 봄바람 따라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여름철에 비가 흠씬 내려 불어난 물살에 뿌리의 흙이 씻겨 내려가 버리면, 실지렁이 모양의 잔뿌리가 곧잘 드러난다. 이 곳은 체 같아서 물에 떠 내려오던 작은 나뭇가지와 이파리에서 산 속의 온갖 잡동사니까지 모두 걸려든다. 그래서 쓰레기를 치워주고 물에 녹아있는 질산태 질소와 인산을 흡수하여 수질을 정화하는 작은 공장이기도하다. 그뿐이 아니다. 이름도 아련한 버들붕어, 버들치, 버들개 등 우리의 토종물고기들은 모두 갯버들 뿌리 속을 숨어 살 수 있는 안식처로 쓴다.
갯버들과 비슷한 종류로서 선조들이 생활용품을 만드는데 널리 쓰인 키버들이 있다. 다른 이름으로 고리버들이라 하며 쉽게 휘고 질긴 가지를 엮어서 옻상자(고리), 키, 광주리, 동고리, 반짇고리 등을 만들었다. 고리버들로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을 특히 고리장이 혹은 유기장(柳器匠)이라 하여 백정과 함께 가장 멸시받는 계급으로 분류된다.
고려사 최충헌(1149-1219) 조에 보면 '압록강 국경지대에 살고있는 양수척(楊水尺)은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공격하여 이주시킨 사람들의 후손이다. 수초를 따라서 유랑 생활을 하면서 사냥이나 하고 버들 그릇을 엮어서 팔아 먹는 것으로 생업을 삼았으며 대체로 기생은 근본이 고리장이 집에서 나왔다'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고리장이가 천민이 된 것은 줄잡아도 천년은 넘는 것 같다.
갯버들과 키버들은 모양이 비슷하나 어린 가지에 털이 있고 잎은 항상 어긋나기로 달리는 것이 갯버들, 털이 없고 가끔 마주보기로 달리는 잎이 섞여 있으면 키버들이다.
<경북대 임산공학과 sjpark@k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