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나무
우리가 흔히 쓰는 '가시나무'란 말은 특정의 나무가 아니라 가시가 달린 나무 모두에 대한 대단히 포괄적으로 쓰이는 말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로마병정이 예수를 조롱하기 위하여 씌웠던 관도 가시관이며, 소월의 시에도 가시나무는 등장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가시나무는 험상궂고 날카로운 그 가시와 발음이 같을 뿐이고 참나무과에 들어가니 아무런 관련이 없는 별개의 나무이다.
참나무 무리에는 온대지방에 자라는 상수리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낙엽 참나무와 난대에서 아열대에 자라는 상록 참나무가 있는데, 가시나무는 늘 푸른 참나무 종류의 대표이다. 우리나라의 남부해안과 섬 지방에 걸치는 난대림에 자라며 키가 20m, 지름 두세 아름에 이를 수 있는 큰 나무이다. 제주도의 돈네코 계곡 등 보호받고 있는 상록 숲에 집단으로 자란다. 긴 타원형의 잎은 어긋나기로 달리고 두꺼우며 반질반질하다. 암수 같은 나무로 봄에 수꽃은 꼬리처럼 길게 늘어져 피고 암꽃은 곧추서서 달린다. 가을에 익는 열매는 도토리와 거의 같으나 약간 작고 날씬하다. 낙엽 참나무들과 다른 점은 도토리를 담고 있는 컵의 바깥 면이 가락지를 차곡차곡 얹어 둔 것처럼 6∼9개의 나이테를 만드는 것이다.
가시나무란 이름의 유래는 여러 가지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정종18년(1794) 호남 위유사 서용보가 올린 글 중에, '...길고 곧은 나무는 반드시 쓸만한 재목이고 가서목(哥舒木)은 더욱이 단단하고 질긴 좋은 재목으로서 군기(軍器)의 중요한 수요인데 유독 이 섬(완도)에서만 생산됩니다. 단단한 나무는 자라는 것이 매우 느려서 한 번 잘라 버리고 나면 금새 쑥쑥 자라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더욱 애석하게 여기고 기르기에 겨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가죽나무나 상수리나무 같은 쓸모 없는 재목들과 마찬가지로 땔나무가 되어버리니 앞으로는 각별히 금해야 합니다'.라는 내용이 있다. 물명고에도 가서목은 '가셔목'으로 부른다고 하였다. 훈몽자회에는 가시나무 우(窖, 허)로 나타내었다. 한편 제주도에서는 도토리를 '가시'라하며 나무는 가시목으로도 부른다.
어쨌든 가서목(哥舒木)이나 가시목이 가시나무로 된 것은 틀림없는데, 흥미로운 것은 일본인들도 우리와 꼭 같은 발음으로 '가시'라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 문화가 흘러 들어갔다는 사실은 무엇이던 기를 쓰고 인정하지 않으려 들지만, 아무래도 가시나무만은 우리 이름이 그대로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가시나무 종류는 붉가시나무, 종가시나무, 가시나무, 참가시나무, 개가시나무 및 일본에서 들여온 졸가시나무 등 종류도 많고 이름도 모양도 서로 비슷비슷하다. 잎의 모양으로 서로 구분할 수 있는데, 붉가시나무는 잎의 가장자리에 톱니가 없고, 종가시나무는 잎 길이의 1/2이상에만 톱니가 있으며 가시나무와 참가시나무 및 개가시나무는 잎 가장자리 모두에 톱니가 있다. 졸가시나무는 잎 끝이 둥그스름하다.
가시나무는 낙엽 참나무보다 물관 크기와 수가 훨씬 적어 재질은 더 단단하며 고르다. 그래서 튼튼한 병기를 만드는데는 물론 남부지방에서는 다듬이 나무, 방망이 등 박달나무와 거의 같은 쓰임새로 널리 쓰였다. <경북대 임산공학과 sjpark@k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