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양옻나무
검양옻나무는 우리에게 친숙한 나무가 아니다. 남해안에서 섬지방과 제주도에 걸치는 따뜻한 난대림에 자라며 쉽게 눈에 잘 띄지 않아서다. 원래 우리나라에 자랐는지 중국을 통하여 들어온 나무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이 나무에 관련된 자료는 우리나라보다 일본에 훨씬 많다. 일본의 규슈, 시코쿠 등에 널리 재배되었던 옛 자원식물이기도 하다. 옻나무의 주성분인 우루시올이 포함되어 있어서 옻이 오르기도 하며 이름 그대로 옻나무 한 종류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옻을 채취할 만큼의 충분한 양도 나오지 않고 품질이 나빠 옻으로의 값어치는 없다. 옻이 아니라 열매로 밀랍을 만드는 대표적인 식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검양옻나무는 낙엽활엽수 큰 나무로 높이 10m를 조금 넘겨 자랄 수 있으며 거의 한 아름에 이르기도 한다. 제주시 이도동의 오현단(五賢壇)은 조선시대 제주에 유배되었거나 현감으로 부임하여 이 지방 발전에 공헌한 다섯 사람을 모신 곳이다. 이곳 오현단 5기의 비석 뒤에 자라는 검양옻나무는 필자가 본 검양옻나무 중에는 가장 굵고 크다. 높이 6m에 지름 40cm에 이른다. 나이 짐작이 어려우나 50~80년 정도 된 것 같다. 검양옻나무는 어릴 때 수피는 숨구멍이 점점이 있는 회갈색이고 표면이 매끄러우나 나이를 먹으면 세로로 얕은 골이 지면서 갈라진다. 잎은 어긋나기하며 길이 30cm정도로서 아까시나무 잎처럼 깃꼴곂잎이다. 소엽은 7∼15개이고 긴 타원형이며 길이 7∼10cm로서 끝이 짧을 꼬리처럼 생긴 것이 특징이다. 원뿔모양 꽃차례인 꽃대는 가지 끝의 잎겨드랑이에서 나오며 길이 10∼20cm로서 5월에 황록색의 잔잔한 꽃이 한 대궁에 수십 개씩 핀다. 암수가 다른 나무이다.
가을에 붉은 단풍이 곱게 들어 흔히 분재의 소재로도 이용하며 가로수로 심기도 한다. 검양옻나무의 접두어 ‘검양’은 진한 검붉은 빛을 말하는 ‘거먕’이 변하여 된 말로 짐작된다. 유난히 진하게 물드는 검붉은 단풍의 색깔이 ‘거먕 색’이니 아마 이를 두고 붙인 이름일 터이다. 열매는 육질로 둘러싸여 있지만 살이 얼마 되지 않고 가운데 딱딱한 씨가 들어 있어서 핵과(核果)로 분류한다. 직경 5~15mm로서 둥글고 편평하며 가을에 연한 갈색으로 익는다. 꽃이 핀 자리마다 무리를 이루어 달리는 열매는 밑으로 쳐져 있고, 잎 진 늦가을에 보면 나무 전체를 뒤덮을 만큼 많이 달린다.
열매의 가장 중요한 쓰임은 옛날 초를 만들든 밀랍을 채취하는 대표적인 식물이다. 열매는 수확한 다음 쪄서 압착하면 과육과 종자에 포함된 지방유가 나오는 데 이것이 바로 식물성 밀랍이다. 열매 무게 대비 20~30%나 되는 밀랍을 얻을 수 있다. 처음에는 옅은 녹색이나 공기 중에 두면 굳어지는데 이것을 햇빛에 노출시켜 표백하여 이용한다. 초를 만드는데 주로 쓰였고 각종 연고, 포마드, 크레용의 원료로 이용하기도 했다. 밀랍 채취을 목적으로 일본 남부에 한때 널리 제배되기도 하였으나 석유화학 제품에 밀려 지금은 거의 심지 않는다.
비슷한 나무인 산검양옻나무에는 잎과 열매에 털이 있고 검양옻나무는 털이 거의 없는 것으로 구분한다. 그러나 둘의 구분은 어려우며, 산검양옻나무는 예부터 자생하던 나무이고 검양옻나무는 중국에서 들어왔다는 일본학자들의 주장도 있다.
거먕옻나무의 한자이름은 노목(櫨木)이며, 이 나무로 만든 노목궤(櫨木櫃)는 융통성이 전혀 없는 미련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쓰인다. 조선말 학자 홍만종의 수필집 <순오지(旬五志)>에는 옛날 딸을 둔 어느 노인이 검양옻나무 궤를 짜서 남몰래 쌀 쉰닷 말을 넣어 두고 이것을 알아맞히는 사람을 사위로 삼기로 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딸이 장사꾼 총각에게 미리 알려주어 사위가 되었다한다. 이 후로 사위는 장인이 부르기만 하면, ‘노목궤, 쌀 쉰닷 말’ 하는 말만 되풀이했다는 데서 유래한다. 실제로 검양옻나무는 궤짝을 짤 만큼 크게 자라는 나무가 아니니 노(櫨)자가 정확히 무슨 나무를 뜻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한편 <용제총화> 권5에는 ‘밥그릇 노(盧)’라고 쓰서 노목궤(盧木櫃)라 하였으며 비슷한 내용이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