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탕나무
제주도와 남해안에 걸쳐, 주로 난대림에서 자라는‘감탕나무’란 이름의 나무가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조금 생소한 나무다. 하지만 나무나라에서는 감탕나무과(科)라는 초본과 목본을 합쳐 3백 종이 넘는 대식구를 거느리고 있는, 제법 이름이 알려진 집안의 맏형이다. 우리나라에는 먼나무, (科가시나무, 꽝꽝나무, 대팻집나무, 수입종인 낙상홍과 함께‘감탕나무속’이란 작은 가계를 만들었다. 서양에서는‘Ilex’라고 하여 호랑가시나무를 대표로 내세우는 유명한 집안이다. 이들은 꽝꽝나무를 제외하면, 모두 작은 콩알 굵기만 한 빨간 열매와 반질거리는 도톰한 잎이 특징이다. 감탕나무는 초록 잎을 캔버스로 하여 정열적인 붉은 열매를 사이사이에 숨겨두고, 예쁜 애인을 숨겨놓고 보여 주듯 바람이 불 때만 감질나게 잠깐씩 얼굴을 내밀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찍부터 감탕나무의 가치를 인정하여 널리 심고 가꾸어 온 탓에 정원수로 사랑을 받고 있다. 감탕나무속의 나무들은 모두 암수가 다르므로 열매가 열리는 것은 당연히 암나무다. 감탕나무는 아름드리나무로 크게 자랄 수 있어서 가까운 친척 중에는 가장 우람한 체격을 자랑한다. 우리나라에는 보길도 앞의 작은 섬 예작도에 줄기둘레 I.7미터, 키 11미터나 되는 감탕나무 한 그루가 천연기념물 338호로 지정되어 보호 받고 있다.
감탕나무의 잎은 어긋나기로 달리고 두터우며 톱니가 없어 매끄럽다. 잎 표면은 짙은 녹색으로 광택이 있고, 잎 뒷면은 연녹색이다. 대팻집나무와 낙상홍은 낙엽수로서 중부지방까지 자랄 수 있으나 나머지 수종들은 상록수이며 추운 것을 싫어하여 중부지방에서는 볼 수 없다.
감탕나무란 이름은 감탕에서 유래되었다. 감탕이란 아교와 송진을 끓여서 만든 옛 접착제를 말한다. 나무껍질에서 끈끈이로 쓰였던‘감탕’을 얻을 수 있다 하여 감탕나무란 이름이 붙었다. 지금이야 우리나라에서 이런 쓰임은 흔적도 없어졌지만,《남환박물》에서 감탕나무를 ‘점목(黏木)’이라 했으니 옛날에는 접착제의 원료로 쓰인 자원식물이었음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인들은 새를 잡은 데 감탕을 사용했다고 한다. 5∼6월경 수액이동이 한창 활발할 때 감탕나무나 먼나무의 껍질을 벗겨 가을까지 물속에 담가둔다. 필요 없는 겉껍질은 분리되거나 썩어버리고 점액물질이 포함된 속껍질만 남는다. 절구로 찧은 다음 물로 3~4회 정도 반복하여 씻어내면 황갈색의 끈적끈적한 점액물질만 남는데, 정제한 것을‘도리모찌(새떡)’라고 했다. 이름 그대로 새를 잡는 데 이용한 것이다. 그래서 감탕나무의 일본 이름은 원래 새떡나무였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접두어‘새’가 빠지고‘떡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물론 일본에서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에도시대(1603~1867)에는 통에 넣어 시장에 내다팔기도 할 만큼 흔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새잡이에 감탕나무 껍질을 사용했는지는 증명할 만한 명확한 자료가 없다.
도리모찌로 새를 잡는 방법은 이렇다. 새가 좋아하는 먹이를 뿌려놓고 도리모찌를 두껍게 발라둔다. 먹이를 먹으려고 날아온 작은 새들은 서서히 발목까지 빠지는 것을 알아차리고 퍼덕거리다가 결국 날개까지 점액이 묻어서 꼼짝없이 붙잡힌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내가 본 참새 잡이는 조금 잔혹했다. 지게에 얹어 짐을 담은‘발채’를 높이 한 뼘 남짓한 가느다란 받침목으로 받쳐서 비스듬히 누이고 위에 돌을 올려놓는다. 밑에 먹이를 뿌린 다음 긴 줄을 늘어뜨린다. 문틈으로 망을 보고 있다가 참새가 발채 밑에 들어가면 잽싸게 줄을 잡아당겨 압살시키는 방법이다. 어찌 보면 감탕나무로 만든 도리모찌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일본식보다, 순식간에 압살시켜버리는 우리의 참새 잡이 방식이 참새 편에서 보면 더 선호 할 것 같다.
*감탕나무과 (학명)Ilex integra (영명)Elegance Female Holly, Mochi Tree (일본명)モチノキ (중국명)全缘冬青 (한자명)細葉冬靑, 全緣冬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