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나무
나무 관련 이야기를 쓰면서 가능한 한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나무들을 찾으려고 애쓴다. 친근감이 가고 작가나 시인들에게 나무가 어떻게 비춰지는지 알고 싶어서다. 나무는 소월이나 박목월 등 특히 서정 시인들의 시에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전문가가 아니면서도 예리한 눈으로 나무의 특징을 기막히게 잘 그려 놓은 안목에 감탄할 때가 많다.
갈매나무라는 흔치 않은 자그마한 나무가 있다. 백석(白石,1912~1995)의 시에 갈매나무가 등장한다. 그는 소월과 함께 평북 정주 출신이다. 해방 후 고향에 그대로 머무는 바람에 월북시인으로 분류되었다가 1988년 해금 조치 이후, 한때 애인이었던 길상사의 김영한 여사가 그의 시집을 새로 발간하면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의 시‘남신의주 유동에 있는 박시봉 집에’는 만주에서 홀로 떠도는 동안의 처절한 외로움을 담아내고 있어 읽은 이의 가슴을 저리게 한다. 일부를 읽어본다.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그 어느 바람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어두워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생각하는 것이었다…
절망적이고 힘든 생활을 이어가면서 그래도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것은‘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생각하면서인 것 같다.
갈매나무는 어떤 나무인가? 우리말에 갈매색이라고 하면 짙은 초록색을 일컫는다. 한여름의 갈매나무 잎은 약간 반질거리면서 진한 초록색이다. 또《임원경제지》에는‘늙은 갈매나무 껍질로 염색을 하면 역시 진 초록색을 얻을 수 있다’라고 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이렇게 초록빛과 관련된 나무라서 갈매나무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 중북부에서 주로 자라며 습기가 많은 물가나 계곡을 좋아하며, 키가 2~5미터 정도 되는 작은 갈잎나무다. 암수가 다른 나무이며 5월에 작은 황록색 꽃이 피었다가 가을이면 콩알만 한 새까만 열매가 열린다. 이를 두고 한자 이름은 서리(鼠李)라 했다. 자두(오얏)는 옛사람들이 즐겨 먹던 귀중한 과일인데,‘쥐 오얏’이라 했으니 쥐가 좋아한다는 뜻일 터다. 작은 가지들은 자라면서 끝이 뾰족한 가시로 변한다. 작은 나무이면서 맛있는 열매를 달고 있으니 함부로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다.
《동의보감》에 보면 갈매나무는 약제로 쓰인다. 우리자(牛李子)라는 열매는‘추웠다 열이 났다 하는 결핵성 염증을 없애고, 어혈을 풀리게 하며 임질과 냉기를 없애며 몸이 붓고 헛배가 부른 것을 낫게 한다’라고 했다. 뿌리 즙과 껍질도 약제로 쓰였다.
오늘날 갈매나무는 그렇게 흔히 만날 수 있는 나무는 아니다. 등산길에 혹시 마주치기라도 하면 다행이다. 그러나 삼국시대 이전의 문화유적 발굴 현장을 조사해보면 갈매나무는 거의 빠지지 않는다. 그만큼 당시에는 흔한 나무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염색재료 이외에 따로 쓰임이 알려져 있지 않은 나무이나 옛날에는 자연 분포가 더 많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나무의 물관배열이 너무나 독특한 문양공재이므로 썩은 나무에서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갈매나무과 (학명)Rhamnus davurica (영명)Dahurian Buckthorn (일본명)チョウセンクロツバラ (중국명)鼠李, 黑老鸦刺 (한자명)牛李, 鼠李, 凍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