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비나무
북한의 개마고원은 해발 2000미터가 넘는 봉우리가 이어지는 곳이다. 흔히 깊은 산골을 말하는 삼수갑산이 바로 이 일대다. 가문비나무는 겨울이면 삭풍이 몰아치는 이런 차가운 고산지대의 터줏대감들이다. 그것도 외톨이가 아니라 숲을 이루어 자란다. 전나무, 잎갈나무 등과 함께인 경우가 많다. 강추위와 바람에 버티려면 혼자보다는 여럿이 모여 사는 것이 유리하다는 계산에서다. 남한에도 지리산 반야봉 일대와 덕유산, 오대산 등의 산꼭대기에 자라기는 하지만 숲을 이루지는 못하고 겨우 목숨만 붙어 있을 정도다.
가문비나무란 이름은 흑피목(黑皮木)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다. 비슷한 나무인 전나무나 분비나무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껍질이 진한 흑갈색이어서, 처음에는 검은피나무로 불리다가 가문비나무가 된 것이다. 키 40미터에 둘레가 3~4미터까지도 자라며 원뿔형의 나무가 큰 숲을 이루므로 집단 서식지는 아름다운 수해(樹海)를 만든다. 가지와 열매가 밑으로 늘어지는 독특한 모습도 볼만하다. 순수 우리 가문비나무는 고산식물이라 평지에서는 잘 자라지 않으므로 유럽에서 들여온 독일가문비나무를 정원수로 흔히 심는다.
가문비나무는 아름다운 바깥 모습뿐만 아니라 재질이 좋기로 이름이 나 있다. 검은 껍질과는 달리 속살은 연한 황백색으로 흔히 전나무와 함께 ‘백목(白木)’이라 부르기도 한다. 고급 내부 장식재로 이용되고 종이를 만들면 탈색제를 덜 넣어도 고급종이를 만들 수 있다. 또 나이테 지름이 거의 일정하여 소리의 전달성이 좋으므로 고급 피아노의 향판(響板)은 거의 가문비나무다.
가문비나무의 종류는 북반구의 한대지역에 약 40여 종이 분포되어 있으며 특히 알래스카 및 캐나다 등에 널리 자란다. 국제 목재시장에서는 ‘스프루스(spruce)’란 상품명으로 거래되며 우리나라에도 많은 양이 수입된다. 한반도에는 종비나무, 풍산가문비나무가 같이 자라는 형제나무이나 모두 북한에만 분포한다.
중종 28년(1533)에 성절사 남효의의 보고 중에 ‘명의에게 물었더니 삼목(杉木)은 송진이 없는데 이것은 송진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필시 회목일 것이다’ 라는 대목이 나온다. 삼목은 전나무를 말하며 현미경으로 관찰해보면 정말 송진 구멍이 없고, 가문비나무는 송진 구멍이 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회목은 가문비나무다. 그러나 옛사람들이 전나무와 가문비나무를 따로 구분하여 나타낸 것 같지는 않다. 가문비나무는 전나무와 함께 회목(檜木)이라 했다.
가문비나무와 전나무는 서로 속(屬)이 다른, 촌수가 조금 떨어진 나무이나 모습은 매우 비슷하다. 2년 가지의 잎 붙은 자국이 까끌까끌하면 가문비나무 종류, 매끄러우면 전나무 종류로 구분하는 것이 가장 간단하다. 열매는 가문비나무가 아래로 쳐지고 전나무는 위로 곧추선다. 그러나 열매가 잘 달리지 않고, 달렸더라도 까맣게 높은 곳이므로 쳐다보기도 어렵다.
*소나무과 (학명)Picea jezoensis (영명)Yezo Spruce (일본명)エゾマツ (중국명)鱼鳞云杉 (한자명)魚鱗松, 塔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