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래나무
가래나무 열매는 럭비공처럼 생겼으나 더 갸름하고 양끝이 뾰족하다. 망치로 두들겨야 깨질 만큼 단단하고 표면은 깊게 패인 주름투성이다. 날카로운 양쪽 끝을 조금 갈아버리고 두 개를 손안에 넣어 비비면 딱 알맞을 크기다. 그래서 가래 알은 옛사람들의 먹을거리에서 지금은 무료함을 달래고 혈액순환을 좋게 한다고 엉뚱하게 우리들 손아귀에서 고생하는 과일이 되었다.
가래나무는 우리나라의 약간 추운 중북부에 원래부터 자라고 있던 토종 나무다. 더 맛이 좋은 호두가 들어와 자리를 빼앗기기 전까지 가래는 고소하고 영양가 높은 간식거리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청동기시대나 삼국 초기의 옛 생활터전에서 가래가 다른 유물과 함께 널리 출토되고 있음이 이를 증명한다.
가래나무의 원래 한자 이름은 추자(楸子)다. 이름의 유래를 찾아보면 옛 농기구 가래를 나타내는 초(鍬)에서‘쇠금 변’을‘나무목’으로 바꾸면‘가래 추(楸)’가 된다. 이는 가래 알이 농기구 가래와 모양새가 닮았다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생각한다. 가래는 호두와 모양이 비슷하고 쓰임도 같아 옛 문헌에서 글자가 서로 뒤섞여 있다. 호두나무는 호도(胡桃)나 당추자(唐楸子)로, 가래나무는 추자로 나타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고려 숙종 6년(1101)에 평안도 평로진 관내의 추자 밭을 떼어 백성들이 경작하도록 나누어 주었다는《고려사》 기록이 나오는데, 이것은 가래나무가 맞다. 반면에《세종실록지리지》에 천안군의 토산물로서 추자가 들어 있다. 이때의 추자는 호두나무로 보아야 한다. 또 경상도에서는 추자란 바로 호두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처럼 옛사람들은 호두와 가래를 엄밀하게 구분하여 사용하지 않아서 옛 문헌을 읽을 때 약간의 혼란이 있다.
오늘날 가래나무 목재는 고급 가구재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옛날에는 특별한 쓰임새가 따로 있었다. 옛 중국에서는 임금의 시신을 넣는 관을 재궁(梓宮)이라 했는데, 재는 가래나무를 말하므로 여기서 재궁이란 가래나무로 만든 관을 뜻한다.《한서(漢書)》곽광전이란 책에 가래나무(梓木)는 ‘천자의 관을 만드는 데 사용한다’라고 나와 있다. 또《후한서》 명제기에도 ‘천자의 관은 가래나무로 만들므로 이를 재궁이라고 한다’라는 내용이 있다. 실제 발굴에서도 장사 마왕퇴 한묘에서 가래나무 관이 출토된 바 있다고 한다.
그러나 임금의 관을 꼭 가래나무로만 만든 것은 아니다.《잠부론》 등 다른 기록에 의하면 측백나무, 녹나무, 넓은잎삼나무, 소나무 등도 쓰인 예가 있다. 세월이 지나면서 재궁이란 말은 나무의 재질에 상관없이 임금의 관을 일컫는 말이 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임금의 관을 재궁이라고 하나, 좋은 소나무를 뜻하는 황장목으로 만들었다.
가래나무와 호두나무는 씨앗을 먹는 것도 비슷하지만 재질이나 다른 특징도 매우 닮은 형제나무다. 둘 다 잎은 한 개의 잎자루에 작은 잎이 여러 개 달리는 겹잎인데, 잎의 모양과 달리는 개수로 서로 구분한다. 작은 잎의 수가 7~9개 이하이고 잎 모양이 약간 둥근 타원형이면서 가장자리에 톱니가 거의 없으며, 열매가 둥글면 호두나무다. 작은 잎의 수가 7~17개 정도이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으며, 열매가 양끝이 뾰족한 달걀 모양이면 가래나무다. 가래와 호두는 모두 부럼으로 쓰는 견과이며 부스럼을 치료하는 민간약으로 알려져 있다.
*가래나무과 (학명)Juglans mandshurica (영명)Mandshurica Walnut (일본명)オニグルミ (중국명)胡桃楸 (한자명)梓, 楸木, 楸子, 核桃木, 山核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