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비자나무
개는 약 1만 년 전부터 사람 곁에서 함께 살아왔다고 한다. 우리는 흔히 개를 말할 때 충견(忠犬)이라는 표현을 잘 쓴다. 말 그대로 결코 주인을 배신하지 않은 동물로 사랑을 받았다. 동양에서는 12간지의 11번째 동물인 개와 사람에 얽힌 아름다운 이야기들은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그러나 어떤 사물에‘개’라는 접두어가 붙기만 하면 격이 떨어지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변해 버린다. 나무도 마찬가지다. 많은 쓰임새 때문에 나무나라에 널리 알려진 비자나무와 생김새가 닮았으나, 개비자나무는 쓰임의 가치가 비자나무에 훨씬 미치지 못하다는 뜻이 들어 있다. 개비자나무로서야 살아가는 방식이 비자나무와 다를 뿐 서로 비교하는 것 자체가 못마땅할 터다.
개비자나무는 한반도의 허리, 대체로 휴전선 이남의 숲속 그늘에서 주로 자라는 자그마한 나무다. 흔히 볼 수 있는 크기는 키 3미터 정도의 늘 푸른 바늘잎나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개비자나무는 천연기념물 504호로 지정된 수원 융릉 개비자나무다. 셋으로 갈라져 자라며 가장 굵은 줄기는 둘레 80센티미터, 키 4.0미터 정도 된다.
숲속의 개비자나무는 햇빛을 그렇게 많이 필요로 하지 않으므로 키 큰 갈잎나무 아래에서 주로 자란다. 특히 습기가 많은 숲의 가장자리나 계곡을 좋아한다. 숲속에서 푸름에 묻혀버리는 여름날에는 개비자나무를 찾아내기가 어렵다. 낙엽 진 겨울 숲이라야 나무가 쉽게 눈에 들어온다. 자기들끼리 큰 무리를 이루어 자라는 경우가 드물고, 몇 그루씩 띄엄띄엄 흩어져 있어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나무는 아니다.
나무 밑의 약한 빛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많은 잎이 달린 가지를 돌려나기 하면서 옆으로 뻗는다. 더욱이 새로 나온 가지는 잎과 마찬가지로 초록색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 햇빛이 부족한 곳에서 광합성에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주기 위해 설계된 것이라고 짐작된다. 대부분의 개비자나무는 땅에 붙어 있다시피 하여 둥그스름하게 퍼지지만, 가끔 크게 자라는 개체는 키가 훌쩍 자라 제대로 된 나무의 모습을 갖춘다. 나이를 먹은 줄기는 암갈색의 껍질이 세로로 얕게 갈라진다.
잎은 좁고 납작한 선형(線形)이다. 비슷한 잎을 가진 주목이나 비자나무보다 조금 넓고 길다. 끝이 뾰족하나 전체적으로는 잎이 딱딱하지 않고 부드러우며 뒷면에는 숨구멍이 있어서 하얗게 보인다. 잎은 어긋나기로 달리는데, 위에서 내려다보면 날개를 펴고 있는 것 같은 ‘비(非)’자 모양이다. 암수가 다른 나무로 봄에 꽃이 핀다. 암꽃은 작은 가지 끝에 거의 초록빛으로 2~3개씩 달리며, 수꽃은 연한 노란빛으로 잎겨드랑이에 6~9개가 모여 아래로 달린다. 열매는 새끼손가락 첫마디 크기에 둥글며, 꽃이 핀 다음해 8∼9월에 들어간 주홍빛으로 익는다. 한 개의 씨가 들어 있고, 주위에는 약간 단맛이 나는 육질로 둘러싸여 있다. 씨는 기름 성분을 많이 포함하고 있으나, 냄새가 나므로 옛날에는 식용보다 등유나 기계유 등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비자나무와 비슷하지만 잎이 더 크고 뒷면의 숨구멍이 하얗게 보이며, 손바닥을 펴서 잎의 끝을 눌러 보았을 때 찌르지 않고 부드러운 것이 차이점이다. 추위에 비교적 강하므로 늘푸른나무가 적은 중부지방의 정원수로 관심을 가져 볼만하다. 담벼락 밑 그늘진 곳에 한 그루쯤 심어두면 자칫 삭막해져 버리기 쉬운 겨울날의 정원이 한층 풍요로워질 것이다.
*개비자나무과 (학명)Cephalotaxus harringtonia (영명)Japanese Plum Yew (일본명)イヌガヤ (중국명)粗榧 (한자명)朝鮮粗榧 (북한명)좀비자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