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적을 물리치다 산화한 장군의 혼이 서린 장성 단전리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예부터 흔하면서 쓰임이 넓었다. 살아서는 마을 지킴이 당산나무로서 친숙하였으며, 죽어서는 육신을 고스란히 보시하여 오랜 세월 동안 우리 곁에 함께 있어주었다. 경주 천마총의 관재, 부석사 무량수전과 해인사 대장경판 보관 건물인 법보전의 기둥, 큰 절의 구시, 전통가구 등 느티나무로 만들어진 문화재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전국에 보호수로 지정된 고목나무는 모두 12,696주이고 이중 느티나무가 7105주로서 56%에 이른다. 우리나라 당산나무의 대부분도 느티나무다. 이렇게 느티나무 고목이 흔하다 보니 천연기념물 지정을 받기가 무척 어렵다. 다른 느티나무와 차별화되는 대단한 특색을 갖추어야 가능한 일이다.
장성 백양사 앞에서 1번 국도를 타고 장성읍 쪽으로 4km쯤의 길가에 자라는 느티나무 한 그루를 만나러 가 본다. 가장 최근에 지정되었으며 크기는 높이 20m, 가슴높이 둘레 10.5m로서 어른 일곱 사람이 팔을 벌려야 안을 수 있는 굵기다. 우리나라 느티나무 중 가장 굵은 나무로 알려져 있다. 가지 펼침은 동서 28m, 남북 30.5m에 이른다. 땅위 3m 부위에서 다섯 가지로 갈라져 아름다운 원뿔 모양을 이루고 있다. 나무와 인접한 동북쪽에는 서귀정(瑞龜亭)이란 편액을 단 아담한 정자가 자리 잡았다. 줄기에 거의 썩은 부분을 찾을 수 없을 만큼 건강하고 자람 상태가 좋다.
이 느티나무는 마을을 지켜주는 신목(神木)이고 당산목이면서 ‘장군나무’라는 특별한 이름을 갖고 있다. 일대는 전남 강진을 본향으로 하는 도강김씨의 집성촌이 있는 곳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 마을 출신 김충남은 이순신장군의 휘하로 들어가 왜적과 싸우다 전사한다. 동생 김충노는 형의 영혼을 달래고 나라에 목숨을 바친 형의 고귀한 뜻을 기리기 위하여 이 느티나무를 심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동생도 이어서 전쟁터에 나갔다가 형처럼 전사하고 만다. 그의 시신을 찾지 못한 채 초혼장(招魂葬)을 치렀으며 묘지가 마을에 남아 있다. 두 형제의 죽음은 나라에서도 안타깝게 생각하여 나란히 선무원종공신(宣撫願從功臣)으로 제수된다. 비록 정식 선무공신으로 책봉되지 못했고 무려 9,060명이나 되는 선무원종의 준공신에 들었을 뿐이지만 나름대로 공로가 있음을 나라로부터 인정받은 셈이다. 이후 느티나무는 두 형제 장군의 의연한 기상을 물려받은 듯 무럭무럭 잘 자라 장군나무란 이름에 어울리게 오늘의 웅장한 모습이 되었다. 임진왜란 때 심은 나무이니 나이는 약 400년이 된다.
이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옛날에는 음력 정월 초닷샛날 성대한 당산제를 올린 곳으로도 유명하다. 제를 본격적으로 올리기 전에 소와 말을 위한 제물로 짚, 콩 등을 가져다가 느티나무 주위에 뿌리면서 우마의 건강과 풍농을 비는 우마제(牛馬祭)를 먼저 올렸다. 정초에 선정된 화주(化主)와 축관은 제를 지내기 사흘 전부터 화주의 집과 마을 입구, 당산에 금줄을 쳐서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금하였다. 당산제를 앞뒤로 사흘 동안 마을사람들은 어육을 먹지 않았다. 화주 내외와 축관은 당산제 당일에는 대소변 뒤에 반드시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는 등 금기를 지키고, 제를 지낸 뒤에도 행동을 삼가고 조심하였다. 당일 저녁이 되면 주민들은 각자 나무를 한 짐씩 해다가 마을 앞 공터에 쌓고 불을 피우고 풍물을 치며 놀았다. 자정이 되면 주민들은 풍물패를 앞세우고 화주 집으로 가서 제물을 들고 나와 느티나무 밑에 진설하고 당산제를 지냈다.
단전(丹田)이 우리 몸에서 배꼽 밑 9cm쯤의 부위를 가리키는 중요한 부위를 말하듯 단전리에는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명당이 있는 곳이다. 나무에서 남서쪽으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장군봉(558m)으로부터 북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옥녀봉에 이르기까지의 지맥(地脈)을 ‘손룡(巽龍)’이라고 부른다. 여기는 대.중.소의 삼손룡이 이어지는 명당 중의 명당이 숨어 있다고 한다. 삼손룡은 하늘과 땅이 숨겨놓은 천장지비(天藏地秘)의 큰 혈(穴)이 있는 곳이며 옥녀봉은 선녀가 비단을 짜는 형국인데, 역시 최고의 명당을 이루는 조건이란 것이다. 이를 믿는 풍수들이 지금도 수없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 혈에다 묏자리를 잡으면 후손이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쥔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아무도 바로 그 혈을 찾았다는 소문은 들리지 않는다. 느티나무는 삼손룡으로 둘러싸인 들판의 한 가운데서 명당 찾기에 혼이 뺐긴 사람들의 부질없음을 탓하듯 웅장한 모습으로 오히려 땅기운을 지그시 누르고 있는 것 같다.
길 건너 마을 입구에는 호남의 대표적인 한학자 변시연 선생이 얼마 전까지 거처하던 손룡정사가 기와집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옛 마을의 품위가 그대로 느껴진다. 나무에서 북쪽으로 1호 국도를 타고 잠시 올라가면 백양사다. 절을 에워싸고 있는 비자나무 숲이 천연기념물 153호이며,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486호 고불매(古佛梅)가 봄날이면 화사한 분홍 매화의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장성 단전리 느티나무, 천연기념물 제478호
2007.08.09 지정, 전남 장성군 북하면 단전리 291
GPS 좌표 : N 35°22′45.8″, E 126°52′2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