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과 유년시절을 함께한 오죽헌의 매화나무
‘매화 옛 등걸에 춘절(春節)이 도라오니/옛 피던 가지에 피염즉 하다마는/춘설(春雪)이 난분분하니 필동말동 하여라.’ 시가집 청구영언에 실린 작자미상의 매화 시 한수이다. 이렇게 매화는 아직 눈발이 간간히 흩어지는 이른 봄날에 핀다.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 선생이 보고 자랐다는 강릉 오죽헌의 율곡매(栗谷梅)를 찾아가 본다. 이 매화나무는 대체로 3월 중순 경에 꽃이 만개한다. 이때는 흔히 꽃샘추위가 찾아오는 계절이다. 쌀랑한 날씨라도 이어지면 오죽헌 지붕위에 하얀 눈이 쌓인다. 이름 그대로 설중매(雪中梅)가 된다.
오죽헌은 조선 초기 강릉 선비 최치운(1390~1440)이 창건한 건물로서 손녀사위인 이사온에게 주었다가, 다시 그의 사위인 신사임당의 친정아버지 신명화의 집이 된다. 신사임당과 셋째 아들인 율곡은 여기서 태어났다. 처음 건물을 지을 당시 정원에다는 여러 그루의 매화나무를 심어 선비집의 운치를 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사임당이 태어난 1504년에 오죽헌 매화나무는 벌써 나이 100여년을 헤아리고 있었다. 율곡이 어린 시절을 보낼 때인 16세기 중반에는 150여년이 넘는 고매(古梅)가 되어 고아한 기품을 뽐내고 있었을 것이다.
매화가 문인들에게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벌써 중국의 육조시대였다고 하니, 조선의 최고 석학인 이들 모자에게 매화는 선비의 품격을 지켜주는 세한삼우의 하나로서 사랑을 받아 왔을 터이다. 매화 향기 그윽한 분위기 탓에 신사임당과 아들딸들은 자연스럽게 매화그리기를 즐겨 한 것 같다. 신사임당은 어릴 시절 그림 공부를 할 때 매화습작6폭(梅花習作六幅)을 시작으로 여러 매화그림을 그렸으며, 고매첩(枯梅帖) 등이 알려져 있다. 장녀인 매창(梅窓) 이부인은 어머니를 능가할 만큼 특히 매화를 잘 그렸다. 작품으로 월매도(月梅圖)가 남아있다. 막내아들 이우는 설중매죽도(雪中梅竹圖), 노매도(老梅圖) 등 역시 매화그림을 그렸다. 또 율곡이 어릴 때 사용한 강원 유형문화재 10호 벼루는 위쪽과 아래쪽에 매화나무가 양각되어 있다. 신사임당 일가는 이렇게 그림으로 매화사랑을 승화시켜 왔음을 짐작케 한다. 예부터 묵매도(墨梅圖)로 대표되는 매화그림은 울퉁불퉁하고 비틀어진 늙은 나무 등걸에 잔가지가 뻗어 나와 살포시 매화꽃이 얹히는 모습으로 그렸다. 오죽헌의 매화를 모델로 그렸을 법한 고매첩이나 월매도를 보아도 고목의 굵은 둥치가 토막을 낸 것처럼 분질러진 모습으로 그려두었다.
그러나 오늘날 오죽헌 건물의 서남쪽 귀퉁이에 홀로 자라는 천연기념물 율곡매는, 전체적으로 아담하며 모양이 깔끔하고 껍질도 깨끗하여 옛 그림에서 보는 고매(古梅)로서의 운치가 나지 않는다. 창건당시에 심었다면 600여년에 이를 나이임에도 오히려 굳세고 싱싱해 보인다. 한마디로 그때 그 매화나무가 고스란히 살아남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래의 매화나무는 나이가 너무 들어 원줄기는 죽어버리고, 지금의 나무는 곁가지가 자라나온 아들나무나 손자나무 쯤으로 보인다.
이 매화의 품종은 꽃 색깔이 연분홍인 홍매(紅梅)종류다. 흔히 보는 백매(白梅)와는 달리 화사함이 돋보인다. 꽃이 필 때는 은은한 매향이 퍼져 오죽헌을 더욱 경건하게 한다. 다른 매화나무에 비하여 훨씬 알이 굵은 매실이 달리는 것이 특징이다. 나무는 높이 7m, 줄기둘레 190cm정도이며 땅위 50cm쯤에서 줄기가 둘로 가라져 자란다. 가지 뻗음은 동서 8.0m, 남북 방향 7.4m로서 대체로 둥그스름한 모양을 하고 있다.
오죽헌 앞마당, 율곡매의 동쪽 맞은편에는 배롱나무 고목 한 그루가 멀리 동해바다를 내려다보면서 자라고 있다. 오죽헌을 지을 때 매화와 선비들이 좋아하는 배롱나무를 함께 심은 것이라고 한다. 아직 천연기념물의 반열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오죽헌의 역사를 말해주는 품격은 매화나무 못지않다.
천연기념물 제484호, 강릉 오죽헌 율곡매(栗谷梅)
2007.10.08 지정, 강원 강릉시 죽헌동 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