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 숲 속에서 힘겹게 살아온 화엄사의 야생매화
조선 중기의 문신 이후백(李後白, 1520~1578)은 그의 저서《청련집》에서 이런 시 한수를 남긴다.
‘가랑비에 돌아갈 길 아득한데/나귀 타고 십리 길 바람 맞으며 가네./야매(野梅)가 곳곳에 피어 있어/그윽한 향기에 넋을 잃겠네.’
여기서 말하는 야매는 사람이 일부러 심고 가꾸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자란 매화를 일컫는다. 보통 매화나무는 좋은 품종을 골라 접을 붙이거나 꺾꽂이로 번식시켜 우수한 형질을 이어간다. 야매란 이와 달리 사람이나 동물이 익은 매실의 과육을 먹고 버린 씨앗이 싹이 터서 자란 나무다. 시에 읊조린 내용대로라면 야생매화가 흔히 있었다는 것이나 야매와 재배매화를 엄밀히 구분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오늘날 야매로 짐작되는 매화나무는 매우 드물고, 일제강점기에 발표된 일부 논문에는 제주도에 야생매화가 있었다고 하나 확인이 안 된다.
남도의 지리산 자락에 자리 잡은 천연고찰 화엄사에는 야매로 짐작되는 매화나무 한 그루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화엄사 대웅전 뒤쪽, 구층암에서 노고단 옛 등산길을 잠시 올라간 길상암이란 암자 앞에 자란다. 키가 3~4m나 되는 이대가 촘촘히 들어선 급경사지의 남향 계곡부에서 힘겹게 버티다가 2007년 천연기념물이라 영예의 타이틀을 얻은 후에야 비로소 나무 곁의 이대가 잘려나가고 조금 숨통이 트였다. 원래 4 그루가 있었어나 3 그루는 죽어버리고 현재 이 한 그루만 남았다고 한다. 이 매화나무는 모양새도 별로 볼품이 없고 그리 굵은 나무도 아니지만, 야매로 짐작되는 나무로서 생물학적인 값어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이 되었다.
이런 야매는 꽃과 열매가 재배 매화보다 작으며 꽃향기는 오히려 더 강한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그러나 필자가 꽃과 열매의 크기를 직접 조사해 보았으나 재배 매화나무와 별다른 차이를 찾을 수 없었다. 앞으로 좀 더 과학적인 검정이 필요하다. 이렇게 자연 상태로 자라는 야매는 자칫 매화를 자칫 우리나라 자생나무로 오해할 수 있다. 잘 알려진 대로 매화나무는 중국의 양쯔 강 서남부를 원산지로 하는 수입나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거의 2천년은 넘었을 것 같다. 삼국사기에 고구려 대무신왕 24년(41) ‘8월에 매화가 피었다’다는 구절이 있으니 벌써 그전에 들어와서 널리 심겨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너무 오래전에 들어온 나무이므로 야매 형태로 발견될 수도 있을 뿐이다.
이곳 매화나무는 거의 순백의 꽃이 피는 백매이며 나무높이 7.8m, 땅위 줄기 둘레 1.5m, 가지 뻗음은 동서 7.7m, 남북방향 6.0m 쯤 된다. 나무줄기는 남쪽을 30도쯤 심하게 기울어져 있으며 땅위 약 0.6m 정도 높이에서 갈라진 후 1.6m 높이에서 다시 붙어 그 위는 거의 수직으로 자라고 있다. 이대와의 경쟁 때문에 높이 5m까지는 거의 가지가 나오지 않았고 이대 위에 마치 비행접시처럼 둥그렇게 수관이 펼쳐져 있다. 이 매화나무는 나이를 추정할 수 있는 자료는 전혀 없다. 굵기와 주변 환경을 보아 대체로 추정해 보면 300년 정도일 것 같다. 서쪽으로 약 5m쯤 떨어져서는 굵기나 높이가 거의 같은 백매 한 그루가 더 있으며 북쪽으로 인접 하여는 작은 연못이 있고 자귀나무 한 그루가 자란다.
3월 20일을 조금 지난 화사한 봄날 화엄사를 찾은 관광객들은 화려한 홍매(紅梅) 한 그루에 정신을 빼앗긴다. 각황전과 원통전 사이에 자리 잡은 이 매화는 꽃이 붉다 못하여 아예 검붉다고 해야 할 만큼 진하다. 그래서 조선 숙종(1674~1720) 때 계파선사가 각황전을 짓고 기념식수한 이 나무의 다른 이름은 흑매화(黑梅花)이다. 화려하고 인상이 너무 강하여 화엄사 스님들 까지도 이 홍매가 천연기념물 매화나무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천연기념물 제485호, 구례 화엄사 매화
2007.10.08 지정,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산20-1
GPS 좌표 : N35°15′23.4″ E127°30′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