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룡사 동백나무 숲
도선의 생애 중에 반에 해당하는 35년간 머물면서 중생에게 설교한 절터가 있다. 남해고속도로 동광양IC에서 북으로 15km쯤 올라가면 동백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옥룡사(玉龍寺) 옛터에 도착한다. 그는 37세 때인 신라 경문왕 4년(864) 이곳에 자리를 잡고, 이후 35 년간 불법을 설파하다가 72살에 입적한다. 벌써 천년이 훌쩍 넘는 세월이 지났으니 도선이란 걸출한 인걸은 흔적조차 찾기 어렵고 산천도 백번은 더 변해 버렸다. 그래도 변함없이 우리를 맞아 주고 있는 것은 울창한 동백 숲이다.
이 일대 동백나무는 절을 지을 당시 땅의 기운을 북돋우기 위하여 일부러 심었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 옥룡사 터 주변에는 153,918㎡에 걸쳐 7,068그루의 동백나무가 옛 명성을 이어 가고 있다. 낮에도 숲속이 껌껌할 정도로 완전히 우거져 있어서 다른 나무들은 감이 들어올 엄두를 못 낸다. 동백나무는 키 6~10m, 가슴높이 둘레 50~80cm의 크기가 가장 많다. 가는 것과 굵은 나무가 섞여 있으며, 키 13.5m, 둘레 150cm에 이르는 고목도 있다. 사람의 손으로 심고 가꾸기도 하였지만 큰 나무에서 씨앗이 떨어져 자라는 자연순환도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나이는 도선이 심었던 나무의 아득한 후손인 100~200년생 정도로 짐작된다. 이렇게 많은 동백나무가 집단을 이룬 숲은 이곳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 특별히 돌보지 않음에도 자람이 싱싱하고 튼튼하게 잘 자라고 있다. 3월말에서 4월초에 이르는 개화기에는 꽃 잔치로 장관을 이룬다.
옥룡사 터로 추정되는 숲의 가운데는 다섯 차례에 걸쳐 발굴이 이루어 졌고 곧 복원사업을 벌린다고 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유물이 나오지 않아 옥룡사터의 진위에 대한 약간의 논란이 있다. 원래 절터에는 큰 연못이 있었는데 아홉 마리 용이 살면서 도술을 부려 사람들을 못살게 굴었다고 한다. 전국을 다니면서 길지를 찾던 도선은 여기에 절을 세우기로하고 용들에게 물러가라고 한다. 여덟 마리는 사라졌으나 백룡(白龍) 한 마리만은 그대로 버티었다. 도선이 지팡이를 휘둘러 눈을 멀게 하였으나 여전히 버티자, 이번에는 도선이 도술을 부려 연못의 물을 펄펄 끓게 하였더니 백룡도 버티지 못하고 도망쳐 버렸다고 한다. 지금은 이 전설에 따라 자그마한 연못 하나를 복원해 두었다.
오늘날 이 일대는 약간 메마른 야산 자락이나 전설로 미루어 본다면 당시는 연못이 있었거나 습기가 많은 축축한 땅이 아니었나 싶다. 절을 짓기 위하여 물기를 빼내고 땅을 골라야 한다. 고심하던 그는 눈병 걸린 사람이 숯 한 섬을 지고 오면 눈병이 낳는다고 소문을 낸다. 사람들이 숯을 가져다 연못을 메워 절터를 닦았다고 한다.
어렵게 절이 완성되자 불에 잘 타지 않은 동백나무 등 치산치수에 정성을 쏟는다. 아울러서 이름에 백(白) 자가 들어가는 사람은 이 절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덕분에 이후 500 여년에 걸쳐 절은 번성하였으나 12세기 중엽 큰 불을 만나 처음으로 폐사가 되어 버린다. 사람들은 도선의 유언을 어기고 백자가 들어간 사람이 몰래 절에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후에도 여러 번 절을 다시 지어 도선의 뜻을 이어 왔으나 1878년 다시 불타 버린 후 지금까지 빈터로 남아 있다.
천연기념물 제489호, 광양 옥룡사 동백나무 숲
2007.12.17 지정, 전남 광양시 옥룡면 추산리 산35-1외
GPS 좌표 : N 35°02′49.7″, E 127°36′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