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우 장군의 북소리가 울려 퍼질 듯 한 의령의 현고수(懸鼓樹)
멀리 경남 의령 땅,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곽재우 장군의 생가가 있는 유곡면 세간리 마을로 달려가 본다. 유곡천을 옆에 끼고 남북으로 넓게 트인 들판의 가운데 1백여 호가 모여 사는 전형적인 우리의 농촌 마을이다. 마을 앞에는 구부정하게 허리를 굽히고 있는 느티나무 한 그루가 길손을 맞는다. 이름은 현고수(懸鼓樹), 북을 매다는 나무란 뜻이다. 평화롭게 북치고 장구 치는 놀이용이 아니라 금방 적의 섬멸을 독려하는 전쟁터의 북소리가 터져 나올 것만 같다. 나무 자신의 몸에 북을 매달아 놓고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과 함께 왜적을 섬멸하는데 한 몫을 했기 때문이다.
선조 25년(1592) 4월 13일 왜군은 부산포를 기습 상륙하여 금방 함락해 버린다. 7년 전쟁 임진왜란이 시작된 것이다. 당파싸움에 휘둘려 대비 없이 멍하게 앉아있던 관군은 변변한 대응한번 못하고 연달은 패배로 풍비박산되고 만다. 소식을 들은 의령 땅의 곽재우는 선비로서 소중히 아끼던 책과 붓을 던지고 왜적과 싸우기로 결심한다. 자신의 재물을 털어 무기와 군량을 마련한 그는 전쟁발발 후 불과 9일만 인 4월 22일 전국 최초의 의병을 모집하여, 17장령들과 함께 서부 경남으로 들어온 왜군을 무찌른다.
잠시 숨을 돌린 장군은 찾아오는 의병을 전장으로 계속 내보내기 위하여 무엇보다 훈련이 급선무였다. 그는 우선 커다란 북을 하나 마련하여 마을 입구 당산목 느티나무에 매달았다. ‘두두둥 두두둥’ 넓은 들판을 굵게 울려 퍼져 나가는 북소리는 젊은이들을 마음속 깊이부터 나라를 지켜야겠다는 의분으로 들끓게 했다. 북소리는 병사들의 사기를 높여주었고 군령을 전달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현고수는 곽재우 장군이 말을 매고 큰북을 달고 치며 의병들을 불러 모은 바로 그 때 그 나무다. 이 나무는 높이 자라서 넉넉한 가지를 뻗어 쉼터를 만들어주는 흔한 느티나무 고목이 아니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별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배가 불룩 나온 달마화상을 연상하는 줄기부터 범상치 않다. 높이 5m 남짓에서 갑자기 굵기가 가늘어 지면서 곧추서는 줄기는 동쪽으로 거의 땅과 수평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얼핏 보아 전체 모습은 ㄱ자다. 하지만 자연 상태에서 이런 모습으로 자랄 수는 없다.
원래 나무줄기는 중력과 같은 방향으로 자라며, 중심을 잡기 위하여 가지만 옆으로 뻗는다. 물론 덩굴나무나 개나리 같은 관목은 그렇지 않으나 대부분의 큰 나무 줄기는 평지에서는 땅과 직각으로 자란다. 그래서 넘어진 나무는 차츰 일어나며 비스듬하게 심어도 자라면서 곧추서버린다. 그러나 현고수는 자연의 이런 법칙을 따르지 않았다.
왜 이런 모습이 되었을까? 생각해 볼 수 있는 가정은 두 가지다. 나무의 끝 부분을 잡아당겨 일부러 구부려 놓거나, 아니면 줄기를 잘라 버리고 옆으로 뻗은 가지만 남겨놓은 방법이다. 어느 쪽인지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후자의 가능성이 훨씬 높다. 곽재우 장군이 북을 걸 당시에는 평범한 당산목 느티나무이었을 터이고 북은 좀 굵은 나뭇가지에 매달았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후손들이 곧은 줄기를 없애고 현고수란 이름에 걸맞게 지금 모습으로 키운 것으로 짐작된다. 나무는 굵기 2.3m, 키 15m정도로서 줄기의 대부분은 인공 충전물질을 채워져 있다. 나무 생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은 이런 인공충전물 넣기는 우리나라 고목의 품위를 떨어트리는 주범이다. 나이는 곽재우 장군이 북을 매달 만큼 당시에 상당히 큰 나무가 자랐을 터 이므로 적어도 500년 이상이라고 짐작한다. 이 곳에는 현고수외에도 마을 뒤로 돌아 들어가면 천연기념물 302호 은행나무 한 그루가 같이 자란다. 높이 25m, 지름 3m나 되며 높이 2m쯤 되는 곳에서 큰 가지들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전체적으로 웅장하면서 원추형을 이루는 아름다운 나무이다. 대체로 현고수와 같은 시기에 심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현고수 옆에는 장군의 생가가 있었다고 하며 아버지 곽월(郭越)이 지었다는 정자가 용연정( 龍淵亭)이라는 이름으로 근년에까지 남아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 2005년 은행나무 옆에는 곽재우 장군의 생가를 복원하여 말끔히 단장하였다. 아직은 너무 새 건물이라 장군의 정취를 느끼기는 어렵다. 세간리에서 멀지 않은 정곡면 성황리에는 천연기념물 359호 소나무가 자란다. 옆에 같이 자라는 다른 소나무와 가지가 서로 맞닿는 날 해방이 될 것이라는 말이 전해왔는데, 서로 맞닿을 즈음 정말 광복이 되었다는 재미있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또 같은 정곡면 백곡리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감나무가 최근 천연기념물 492호로 지정되어 보호 받고 있다.
찾아가는 길
남해 고속도로 군북IC에서 빠져나와 의령을 거쳐 북쪽으로 뻗은 20번 도로를 탄다. 정곡면 소재지를 지나 대체로 IC에서 약 20km쯤의 왼편 들판 가운데에 세간리가 있다. 잘 알려진 지형지물이 없는 평범한 마을이므로 입구 찾기가 쉽지 않다.
GPS 좌표 : N35°26′12.0″ E128°20′40.9″
의령 세간리 현고수(懸鼓樹), 천연기념물 제493호
소재지 : 경남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 1000번지, 2008.03.12 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