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집 기둥으로의 몸 보시를 기다리는 진안 천황사의 거대한 전나무
조선왕조실록 숙종 39년(1713)조를 보면 부교리 홍치중은 백두산을 답사하고 임금님께 이렇게 보고한다.
‘백두산과 어활강(魚濶江)의 사이에는 거의 3백리에 걸쳐 삼나무(杉樹)가 하늘을 가리어 해를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삼나무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삼나무가 아니라 전나무이며 추운 지방에 자라는 대표수종이다. 이처럼 백두산을 비롯한 북한의 고산지대에 원시림을 이루고 있는 전나무가 오대산 월정사, 부안 내소사, 청도 운문사 등 남한의 오래된 사찰 입구에서도 흔히 만날 수 있다. 사찰을 중창을 하거나 새로 지을 때 기둥으로 쓰기 위하여 일부러 심은 흔적이다. 전나무는 재질이 너무 물러 힘 받은 기둥으로 안성맞춤은 아니지만, 큰 나무로 자라면서 길고 곧은 목재(長大材)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또 여러 나무가 떼를 이루어 같이 자라는 특성이 있으므로 한 곳에서 한꺼번에 목재를 조달할 수 있어서 편리하다.
전나무는 이 땅에 일찌감치 터를 잡아 옛날부터 조상들이 널리 사용하던 전통 우리나무이었지만 천연기념물 반열에 오른 것은 작년에 지정된 천황사(天皇寺) 전나무가 유일하다.
천황사는 충남 금산에서 마이산으로 가는 구 도로로 내려가다 진안을 10여km남겨둔 오른 쪽 골짜기 안쪽에 있다. 신라 헌강왕 원년(875)에 무염선사가 창건하였고 고려 때는 의천대사가, 조선시대에는 학조대사 등이 중창하였다고 한다. 비록 천년이 훌쩍 넘은 고찰이지만 조선후기 건물인 대웅전과 3기의 부도가 옛 영광을 말해 줄뿐 산새 소리만 들여오는 한적한 곳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천황이 자기네 임금을 부르는 이름이라 하여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옛 이름 숭암사라 고쳐 부르게 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천황사에는 두 그루의 아름드리 전나무가 있다. 사찰입구에서 둘레 5.2m, 높이 20m에서 위 부분이 분질러져 버린 전나무 보호수 한 그루를 우선 만나게 된다. 원래 높이는 35m에 이르는 거대한 나무 이었으나 몇 년 전 태풍 루사 때 위부분이 잘려져 버렸다. 우리가 찾아갈 진짜 천연기념물 천황사 전나무는 여기서 남쪽 계곡을 300m쯤 올라간 남암(南庵)이란 허름한 암자 앞에서 비로소 만날 수 있다.
이 전나무는 굵기나 높이가 모두 우리나라 제일이다. 모양새는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긴 원뿔형의 아름다운 나무다. 높이 30m, 가슴높이 둘레 5.5m, 가지 뻗음 은 사방 16m에 이른다. 웬만한 크기의 나무는 계곡 속에 갇히면 주변의 산세에 눌려 왜소해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나무는 엄청난 크기로 오히려 주변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일반적으로 전나무는 뿌리는 얕게 뻗고 키가 커서 바람에 잘 넘어지므로 동료 나무들과 숲을 이루어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홀로 전나무 노거수로 살아남기 위하여는 주위의 지형조건이 잘 갖추어져야 한다. 다행히 나무가 자라는 곳은 Ω자로 생긴 계곡의 가운데 이므로 태풍에도 거의 영향을 받지 않을 조건을 잘 갖추고 있다. 다만 40여 년 전에 지은 암자 건물이 너무 초라하고 붉은 함석지붕은 이 아름다운 전나무의 품위를 떨어트리고 있어서 안타깝다. 그나마 암자를 짓느라 쌓은 축대가 전나무와 거의 붙어 있어서 나무의 자람에 크게 방해가 되고 있다.
천황사는 원래 산 넘어 주천면 운봉리에 있었으나 숙종(1674∼1720) 때 중건하면서 현재의 자리로 옮겨지었다고 한다. 이때 주변의 나무는 모두 베어 쓰고 훗날 절을 다시 중창할 때 쓸 수 있게 전나무를 여러 그루 심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 중 다른 전나무들은 모두 없어지고 천황사 바로 앞의 보호수 전나무와 남암의 천연기념물 전나무만 살아남은 것으로 추정한다. 따라서 두 나무 모두 약 300년의 풍상을 겪어온 셈이다.
주변 둘러보기
천황사에서 잠깐 내려오면 용담호란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 크기의 아름다운 호수가 정겹게 맞아 준다. 다시 남으로 10여km에는 진안의 유명한 마이산이다. 암,수 마이산 사이에 자리 잡은 은수사 마당에는 이성계가 심었다는 천연기념물 386호 청실배나무를 만날 수 있으며, 마이산 절벽 곳곳에 자라는 줄사철나무는 380호로 지정되어 있다. 마이산의 조금 남쪽 마령초등학교 교정에는 어린 아이 무덤 터에 자랐다는 214호 이팝나무가 찾아간 이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또 인접한 장수군에는 군청 앞마당에 논개의 전설이 서린 397호 의암송, 천천면 봉덕리에는 396호 느티나무 등, 이 일대는 천연기념물 나무가 유난히 많다.
천연기념물 제495호, 진안 천황사 전나무
2008.06.16, 전북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 산169-4
GPS 좌표 : N35°54′08.1″ E127°26′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