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로 운교역에서 말울음 소리를 듣고 자라온 늙은 밤나무 한 그루
밤나무골, 밤나무고개, 율동(栗洞), 율목동(栗木洞), 율전동(栗田洞) 등 밤나무가 들어간 지명이 흔하다. 밤나무는 열매와 목재 모두 쓰임이 많아 1천여 종에 이르는 이 땅의 나무 중에 우리와 가까이 지낸 나무로 따지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큼 친숙하였던 탓이다. 6월에 회백색 꽃으로 만났다가 가을날의 알밤을 거쳐 찬바람이 몰아치는 겨울 거리의 군밤까지 밤은 여러 번의 변신을 한다.
밤나무는 이렇게 오랫동안 우리의 생활문화 속에 항상 있어 왔지만 천연기념물 문화재로 이름을 올린 것은 최근 지정된 강원도 평창 운교리 밤나무 밖에 없다. 밤나무혹벌이라는 눈곱 크기 남짓한 벌레의 피해를 받아 재래종 밤나무 고목은 거의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1962년에 97호 지정된 주문진 교항리 밤나무가 90년대 초에 죽어 버린 이후 처음이다.
운교리 밤나무는 찐빵으로 유명한 안흥에서 방림.평창으로 들어가는 42번 국도 옆 작은 음식점 뒤편 산비탈에 자란다. 굵기는 뿌리목 둘레가 640cm나 되니 지름은 2m를 훌쩍 넘긴 셈이다. 1.5m높이에서 둘로 갈라져 있고, 갈라진 줄기도 지름이 1m가 넘는다. 나무 높이는 14m이며 굵은 가지 여러 개가 얼기설기 뻗어 있다. 흔히 만나는 제배 밤나무와는 달리 엄청난 굵기에 놀란다. 고목으로서의 의젓한 품위와 주위를 압도하는 당당함이 돋보인다.
이 밤나무 주위는 서울 동대문에서 출발하여 강릉에 이르는 관동대로의 길목에 있던 운교역 의 마방(馬房)터로 알려져 있다. 횡성군 안흥에서 동쪽으로 문재라는 고개를 넘으면 제법 넓은 들판이 펼쳐지고 그 시작점이 옛 운교역(雲橋驛)이었다. 역이란 중앙과 지방의 연결 통로에 설치된 조선시대의 관공서로서 공문서의 전달, 관리의 왕래에 필요한 숙박과 마필 등을 제공하기 위하여 마련된 교통 및 통신기관으로 우역(郵驛)이라고도 한다.
운교역은 이름 그대로 문재에 걸린 구름다리를 건너면 금방 만나는 역이란 뜻일 터이다. 옛날의 나들이 길이 힘들기는 사람이나 말이나 마찬가지, 지친 말에게 먹이를 주고 이 밤나무아래서 잠시 쉬게 하지 않았나 싶다. 운교역은 벌써 세종실록지리지에 등장하니 기록으로만 보아도 600년이 넘었다. 밤나무가 그때부터 자랐다면 나이는 600여년에 이른다. 고종 때 역사의 뒤안길로 역이 사라질 때까지 수많은 옛 관리들의 애환을 바라본 역사 현장의 나무다.
운교역 일대는 조선 중기까지만 하여도 깊은 산골이었다. 이중환은 그의 저서 택리지에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 1703년 내 나이 14살 때 강릉 원으로 부임하는 아버지를 따라 운교역을 지났다. 여기서 대관령까지는 산이고 평지이고 모든 길이 빽빽한 숲길이었다. 무릇 나흘 동안 길을 가면서 하늘과 해를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수십 년 전부터 산과 들이 모두 개간되어 마을이 서로 잇닿아 있고 산에는 한 치 굵기의 나무도 없다.’ 택리지가 쓰인 것이 1750년경으로 추정되니 1703년 이후 50여년 사이 이 일대가 개간된 것으로 보인다.
밤나무가 이렇게 마방의 한편에서 수백 년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두루두루 쓰임새가 넓은 탓이다. 밤은 탄수화물·단백질·기타지방·칼슘·비타민(A·B·C) 등이 풍부하여 오늘날에도 거의 완벽한 식품의 하나이다. 먹을거리 부족에 시달리던 옛 사람들에게 이런 영양 만점의 밤은 귀중한 식량자원이었다. 옛 무덤에서 심심찮게 밤알이 출토되며, 밤나무를 심고 가꾸라는 행정명령을 옛 문헌에서 흔히 찾을 수 있다. 밤은 바로 밥과 동격이었으며, 필자는 밤나무란 이름이 ‘밥나무’에서 왔다고 믿고 있다. 역은 나라에서 준 토지로 운영하지만 충분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주변에 밤나무를 심어 필요 경비에 보탠 것으로 보이며 이 밤나무도 그때 그 나무 중 하나가 살아남은 것이다. 지금 마을 앞 계곡의 이름이 밤나무골이며 이 일대는 지금도 밤나무가 많다.
밤은 조상들이 관혼상제의 예를 갖출 때 감, 대추와 함께 상에 올린 3대 과일 중의 하나이었다. 가시 돋은 껍질 안에 밤알이 세 개씩 들어 있어서 출세의 대명사인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 함께 있는 것으로 비유되었다. 밤이 싹틀 때 밤 껍질을 땅 속에 남겨두고 싹만 올라오는데, 그 껍질이 오랫동안 썩지 않고 남아 있기 때문에 자신의 근본인 조상을 잊지 않는 나무라고 여겨 제사상에 올렸다는 이야기도 그럴 듯하다. 밤은 이런 사연을 갖고 있으면서 밤나무 목재는 단단하고 잘 썩지 않으므로 사당의 위패(位牌), 제상(祭床) 등 조상을 숭배하는 제사 용품에 빠지지 않았다.
여름이 시작되는 6월 중순에 피기 시작하는 밤나무 꽃은 초록색 잎에 연한 잿빛 가발을 쓴 것처럼 온통 나무를 뒤덮고 있다. 꽃이 한창 피어 있을 때 코끝을 스치는 꽃 냄새는 향기로움으로 가득 찬 다른 꽃들과는 달리 살짝 쉬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 시큼한 묘한 냄새가 난다. 바로 남자의 정액 냄새란다. 옛 부녀자들은 양향(陽香)이라는 이 냄새를 부끄러워하여 밤나무 꽃이 필 때면 외출을 삼갔고 과부는 더더욱 근신했다 한다.
천연기념물 제498호 평창 운교리 밤나무
2008.12.11 지정, 강원 평창군 방림면 운교리 3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