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의 제사 터, 강화 마니산 참성단 지킴이 소사나무
강화도는 한강 폭보다 더 좁은 강화해협으로 육지와 떨어져 있는 섬이지만, 서울의 코밑이라는 지리적인 위치 때문에 주요한 역사 사건의 중심에 흔히 있었다. 강화 섬의 가장 높은 마니산 꼭대기 참성단(塹星壇)의 동편에 홀로 서 있는 소사나무 고목 한 그루를 찾아가 본다.
참성단은 민족의 시조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려고 직접 쌓았다고 알려진 제단이다. 바위가 많은 마니산 능선에다 두께 15~20cm, 길이 30~50cm 정도의 크고 작은 박석(薄石)으로 높이 30m에 이르는 단을 쌓았다. 전체적으로 둥글게 돌을 쌓은 하단(下壇)과 네모로 쌓은 상단(上壇)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둥근 하단은 하늘, 네모난 상단은 땅을 상징한다고 한다. 돌의 크기가 들쭉날쭉하고 가공되지 않은 자연석을 쌓아 올린 모습은 소박하면서도 오랜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참성단에 관한 기록은 ‘세종실록지리지’에 처음 나타나며, 조선 인조 17년(639)과 숙종 26년(1700)에 크게 고쳐 쌓아 오늘에 이른다. 고려와 조선왕조 때는 이곳에서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도 했으나 나라가 주관하는 행사는 아니었다. 조선후기에 들어서서 단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참성단은 민족의 성지로 자리매김했다. 오늘날은 전국체전이 열릴 때에는 이곳에서 성화를 가져가는 행사가 지금까지 관례로 이어져 오고 있다.
참성단 동쪽 입구에서 계단을 걸어 위쪽으로 올라서면, 외곽으로 1.5m정도 높이로 말굽형의 작은 성처럼 석단(石壇)이 둘러 있으며 안으로 편평한 공간이 있다. 다시 북쪽으로 20여 계단을 더 올라간 꼭대기가 제사터이다. 소사나무는 동쪽 출입구 바로 옆, 3단으로 이루어진 석단의 가운데에 자란다. 나무는 둘레 27~84cm에 이르는 8개의 줄기가 사방으로 넓게 퍼지면서 가지를 뻗고 있다. 높이 4.8m, 뿌리목 둘레 2.74m, 가지 뻗음은 동서방향 7.2m, 남북방향 5.7m로서 타원형의 나무갓을 가지고 있다. 현재 나무 나이는 약 150년 전후로 짐작하고 있다. 단군의 전설을 가진 제단의 나무로서는 너무 젊다. 그러나 이렇게 척박한 땅에서는 영양부족으로 오래 살기는 어려운 법, 수십 대를 이어온 자손일터이다.
바위산 꼭대기에다 돌로 높게 쌓은 제단이니 나무가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제대로 갖출 수가 없다. 제단을 쌓을 때 조금씩 묻어온 돌 틈의 흙과, 식물의 생명줄인 수분은 비올 때 잠시 머무는 빗물이 전부이다. 그나마 강열한 햇볕이 내려 쬐며, 건조한 바람이 항상 불어대는 이곳에 수분이 오랫동안 남겨 질 여건이 아니다. 이런 곳에 나무가 자라기는 어렵다. 그러나 생명력 강한 소사나무는 홀로 뿌리를 뻗고 삶의 터전을 마련하여 제단의 마스코트로 살아남았다. 여름날이면 참성단 돌 틈에는 풀이 자라기도 하지만 나무는 오직 이 소사나무 밖에 없다. 홀로 자라면서도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모습이 단정하고 균형 잡혀 있으며 돌담 위에 우뚝 서 있어서 한층 돋보인다.
소사나무는 중부이남 해안과 섬 지방이 원래의 자람 터이다. 큰 나무라야 높이 5~6m, 지름 한 뼘 정도가 고작인 작은 나무다. 메마름과 소금기에 강하며 줄기가 잘려지면 새싹이 잘 나오는 등 척박한 조건을 이겨나가는 나무로 유명하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나는 소사나무는 최소한의 영양분으로 겨우 삶을 이어가는 분재(盆栽)로서 이다.
수많은 나무 중에 하필이면 참성단의 나무로서 소사나무가 선택되었을까? 우연히 씨가 날아와 자랐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의미를 부여할만한 이유가 있어서 심고 가꾸었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우리의 옛 자료에서 이름 없는 이 작은 나무에 관련된 기록은 만날 수 없다. 다만 임경빈 교수는 우리 문화와 연결 고리가 깊은 일본 이름에서 실마리를 끌어내고 있다. 일본인들은 소사나무를 ‘고시데(小西手)’로 말하는데, 시데(シデ)는 신에게 바치는 나뭇가지에 매다는 무명실을 뜻한다. 실에 매다는 백지나 흰 천도 시데라 하여 신에게 바치는 정성 또는 신 그 자체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사나무는 신에게 올리는 깨끗한 징표 같은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일본 문화의 원류가 우리에서 건너간 사실을 감안한다면, 참성단에 소사나무를 심은 뜻은 소사나무를 통하여 신과 소통하려는 바람이 있지 않았나 싶다.
참성단의 소사나무를 알현하는 일은 간단치 않다. 강화 화도면 마니산 국민광광단지 매표소 앞에서 참성단까지는 2.4km의 능선길이다. 줄잡아도 1천개가 넘는 가파른 돌계단을 허위허위 올라가야 한다. 또 항상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개천절과 해맞이를 위한 신정 때 이외는 개방하지 않는다. 평소에는 참성단 건너편 헬기장에서 먼발치로 쳐다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강화도에는 이 소나무 이외에 갑곳돈대와 이건창 선생 생가 앞 사기리의 탱자나무가 각각 천연기념물 78호 및 79호로 지정되어 있다. 옛 강화성 아래에 적군이 기어 올라오지 못하게 심었던 나무라고 한다. 또 외포리에서 배로 한 시간 반 거리의 볼음도에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천연기념물 304호로 지정되어 있다. 수나무인데, 남북분단이후 북한에 있는 암나무를 그리워하여 윙윙거리고 우는 일이 잦아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천연기념물 제502호, 강화 참성단 소사나무
2009.09.16 지정, 인천 강화군 화도면 문산리 산55(참성단)
GPS 좌표 : N37°36′56.1″ E126°25′47.4″ 고도 468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