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후산리 명옥헌 원림
이곳은 조선 인조 때의 문신 오희도(吳希道, 1583∼1624)선생이 살던 곳이다. 그는 인조반정이후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원의 기주관이 되었으나 1년 만에 병사해 버린다. 넷째 아들 오명중은 1652년 무렵 아버지가 살던 이 터에다 명옥헌(鳴玉軒)을 짓고 아래 위 두 곳에다 연못을 파고 배롱나무를 비롯하여 주위에 꽃나무를 심어 아름답게 가꾸었던 이름난 정원이다. 명옥헌이란 이곳의 물 흐르는 소리가 옥이 부딪치는 소리와 같다고 하여 붙여졌다.
동서 20m, 남북 40m의 직사각형 아래 연못 안에는 동그란 섬이 하나 있고, 연못 주변에는 굵은 것은 거의 한 아름에 이르는 배롱나무 수십 그루가 둘러싸고 있다. 꽃이 피는 초여름에는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명옥헌으로 올라가는 길가에는 4그루의 굵은 소나무가 운치 있게 서있다.
명옥헌은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연못 위쪽의 시냇가에는 ‘명옥헌 계축’이라고 새겨진 바위도 눈에 띈다. 우암 송시열 선생의 글씨라고 전해진다. 명옥헌 정원은 다른 곳에서는 보기 드문 구조를 가지고 있어 조선시대 중엽의 정원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찾아가기
호남고속도로 창평IC에 내려 광주 쪽으로 2km쯤에 왼편으로 명옥헌 원림 입구 표찰이 보인다.
전남 기념물 제44호, 1980.06.02지정, 전남 담양군 고서면 산덕리 513, GPS 좌표 : N35°12′59.8″ E126°59′50.0″
담양 후산리 은행나무
이곳은 명옥헌과 마찬가지로 오희도(1583∼1624)선생과 관련되는 전설이 남아있다.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인 능양군 시절 호남지방을 두로 돌면서 세력을 모으던 중 토호인 오희도선생을 만나러 왔다고 한다.
그때 인조가 타고 온 말을 이 은행나무에 매어 두었다고 하여 일명 ‘인조대왕의 계마행(繫馬杏)’이라고 부른다. 원래는 은행나무와 함께 명옥헌 뒤에는 오동나무가 있었는데 현재 오동나무는 고사하여 없어졌고 은행나무만이 남아 있다.
나무는 높이 약 30m, 가슴높이 둘레 640cm, 가지 펼침은 동서방향 18m, 남북 16m로서 크고 웅장하다. 암나무이다. 인조가 말을 맬 정도의 은행나무 이었다면 당시에도 백년은 넘었다고 보아야 하므로 이 나무는 1500년경부터 자라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찾아가기
호남고속도로 창평IC에 내려 광주 쪽으로 2km쯤에 왼편으로 명옥헌 원림 입구 표찰이 보인다. 마을 안으로 들어와 Y자형 도로에서 왼쪽으로 잠깐 들어가면 은행나무와 만난다.
전남 기념물 제45호, 1980.06.02지정, 전남 담양군 고서면 산덕리 485-1, GPS 좌표 : N35°13′08.6″ E126°59′50.8″
담양 연천리 독수정 원림
고려 공민왕 때 병부상서를 지낸 전신민(全新民)선생은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 72현과 함께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이곳에 은거하면서 독수정(獨守亭)을 지었다고 한다. 독수정이란 이름은 이태백의 시에서 따온 것으로 은거하며 생활하는 선비의 고결한 뜻을 나타낸 것이다. 독수정의 방향은 북쪽으로 향해있는데, 이는 아침마다 북쪽 송도(개성)를 향해 탄식을 하며 절을 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독수정 건물은 1972년에 허물고 새로 지은 것이다.
독수정 원림이란 정자 주위의 숲을 가리킨다. 숲에는 느티나무, 회화나무, 왕버들, 소나무, 졸참나무, 상수리나무, 서어나무 등의 오래 된 나무들이 심어져 있고, 독수정 앞뜰에는 배롱나무, 매화나무, 살구나무, 산수유나무 등이 심어져 있어 속세를 떠난 느낌을 준다.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전신민은 대나무와 소나무를 심어 수절을 다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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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고속도로 창평IC에 내려 광주 쪽으로 4km쯤 올라오다 광주호로 들어가는 887번 도로로 좌회전 한다. 광주호와 동복호로 향하는 길이다. 잠시 달리면 남면 소재지인 연천리가 나오고 숲은 남쪽 개울 건너 급경사지 산록에 있다.
전남 기념물 제61호, 1982.10.15지정, 전남 담양군 남면 연천리 산91, GPS 좌표 : N35°10′18.2″ E127°01′45.5″
장흥 부춘리 부춘정 원림
부춘정(富春亭)은 임진왜란 때 혁혁한 공을 세운 문희개(文希凱, 1550~1610) 선생이 고향으로 돌아와 선조 31년(1598)에 지은 정자다. 원래 이름은 청영정(淸潁亭)이었으나 헌종4년(1838) 김기성이란 분이 이곳을 사들여 부춘정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정자가 서 있는 절벽 아래에 물에 잠긴 용호바위가 있는데, ‘용호(龍湖)’라는 글씨가 음각되어 있다. 문희개 선생이 임금을 그리워하여 북쪽을 바라보고 절을 하였다는 ‘망군대의 비’가 정자의 뒤편에 있다. 부춘정은 탐진강의 절벽 위쪽에 건립되어 있으며 주변에는 소나무, 푸조나무, 개서어나무, 단풍나무 등 활엽수 숲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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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에서 23번 도로를 타고 나주 쪽으로 4km쯤, 부산면 소재지인 유양리에 이르기 전 들판의 오른쪽으로 농로가 있다. 탐진강에 걸린 춘정교란 낡은 다리를 건너면 왼편에 부춘정이 있다.
전남 기념물 제67호, 1985.02.15지정, 전남 장흥군 부산면 부춘리 365, GPS 좌표 : N34°42′30.3″ E126°54′37.7″
장흥 용반리 용호정 원림
용호정(龍湖亭)은 비가 와 강물이 넘치면 강 건너 부친의 묘에 성묘를 하지 못하고, 바라만 보며 명복을 빌던 아버지 최영택을 위해 최규문(崔圭文) 선생이 조선 순조 29년(1829)에 지은 정자로, 최규문의 부친에게는 ‘부친을 바라보는 정자’요, 최규문에게는 ‘부친을 위로하는 정자’라 하였다.
정자는 느티나무 목재로 만든 8개의 원형 기둥을 세우고, 밤나무와 느티나무 목재만을 사용하여 지은 목조 기와집이다. 특히 사방에 놓여있는 마루는 못을 사용하지 않는 특수공법으로 조립되었다. 현재의 정자는 1947년에 고쳐 지은 것으로 원래보다 2칸 더 넓어진 것이라 한다.
탐진강 북쪽 기슭에 세워진 이 정자는 약 10m 아래로 강이 흐르는 깎아 세운 듯한 벼랑 중턱에 세워져 있다. 느티나무, 서어나무, 상수리나무 등 여러 활엽수로 이루어진 주변 숲과 용호정이 한데 어울려 아름다운 풍광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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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에서 23번 도로를 타고 나주 쪽으로 달리다 부산면 소재지 유양리를 지나 3km쯤에 지천리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좌회전하여 다시 U턴하고 23번 도로 밑으로 빠져 나오면 숲은 탐진강 절벽에 정자가 있다.
전남 기념물 제68호, 1985.02.15지정, 전남 장흥군 부산면 용반리 545
화순 사평리 임대정 원림
임대정은 멀리 들판을 바라보면서 나지막한 언덕에 정자를 짓고 앞에 연못을 파서 정원을 만들었다. 연못은 2개를 팠으며 원림의 나무는 전나무, 상수리나무, 배롱나무가 눈에 띄고 연못의 앞에는 근래에 심은 벚나무가 화사한 봄날에는 한층 돋보인다. 전통적인 정원의 특징을 그대로 담고 있다하나 벚나무 때문에 오히려 일본 정원을 연상하게 한다.
이 원림(園林)은 조선 철종 때 병조참판을 지낸 사애 민주현(閔胄顯, 1808~1882) 선생이 1862년 임대정(臨對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그 주위에 가꾼 숲이다. 임대정이란 이름은 봉정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사평천과 합쳐지는 곳에 정자가 위치하였다 하여 ‘물가에서 산을 대한다’는 중국 송나라 주돈이의 시구를 딴 것이라고 한다. 정자에서는 사평천과 광활한 평야가 보이고, 그 둘레에는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어 깨끗하고 시원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옛날에는 많은 문인들이 찾아와 시를 읊었고, 충효예절을 가르치는 서당으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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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에서 주암호 쪽, 벌교 고흥으로 내려가는 4차선 도로를 탄다. 남면소재지 쪽으로 우회전하여 읍내를 지나 2km쯤 왼편에 들판을 가로지르는 넓은 도로가 있고 높다란 교회가 보인다. 끝에서 다리를 건너 오른쪽에 임대정 원림이 있다.
전남 기념물 제69호, 1985.02.25지정, 전남 화순군 남면 사평리 599, GPS 좌표 : N34°59′47.1″ E127°05′48.3″
장성 황룡리 요월정 원림
이 원림(園林)은 조선 명종 20년(1565) 공조좌랑을 지낸 김경우(金景遇)가 관직에서 물러나, 은거하기 위해 지었다는 요월정(邀月亭)이라는 정자 주위의 숲을 말한다. 요월정에 올라서면 황룡강과 탁 트인 들판이 보인다. 정자는 황룡강 절벽 위쪽에 지었으며 정자 주위에서 강 쪽의 급경사지에는 100여 그루의 배롱나무가 둘러싸고 있으며,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어 여름이면 붉은 꽃으로 장관을 이룬다. 정자의 위쪽으로는 소나무 숲이 잘 조성되어 있다.
정자에는 하서 김인후, 고봉 기대승 등 명현들의 시가 현판에 새겨있다. 그 중에서 후손 김경찬이 이곳의 경치를 찬양하여 ‘조선 제일의 황룡이다’라고 현판에 새겼더니, 나라에서 불러 “황룡이 조선 제일이면 한양은 어떠하냐?”라고 질문을 해서 “천하에 제일입니다”라고 답하여 화를 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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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고속도로 장성IC에서 내려 황룡면 사무소 마을을 거쳐 약 5km거리에 넓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황룡정과 산 쪽으로 잠시 올라가면 요월정 정자가 있다.
전남 기념물 제70호, 1985.02.15지정, 전남 장성군 황룡면 황룡리 171, GPS 좌표 : N35°16′28.2″ E126°44′53.6″
신안 장산도 도창리 노거수
목포에서 배를 타고 서남쪽 1시간 반 거리에 장산도란 섬이 있다. 서남해안의 여러 섬의 하나이면서 높은 산이 거의 없이 대부분이 평지라 예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섬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섬에는 고인돌 군(群)과 대성산성(大城山城), 백제고분, 불상 등의 문화재가 있는 섬이기도 하다.
이 숲은 장산면 소재지인 도창리 마을의 동북쪽에서 남서쪽으로 기다랗게 뻗어 있다. 약 200여 년 전 조성되었다고 하며 처음에는 길이가 1km에 이르렀으나 지금은 352m만 남아있다. 폭은 넓은 부분 36m, 좁은 부분은 6m정도이며 면적은 3,476m³에 이른다. 수종 구성은 팽나무 63그루, 주엽나무 12그루, 가죽나무 4그루, 예덕나무 2그루 등 모두 101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다. 최근에 심은 배롱나무와 모과나무가 눈에 띄기도 한다.
나무의 크기는 팽나무 높이 11m전후, 가슴높이 둘레 2m전후가 많고 큰 것은 둘레 3.4m에 달하는 것도 있다. 곰솔은 높이 9~15m, 가슴높이 둘레 0.8~2.3m, 예덕나무는 높이 7m, 가슴높이 둘레 0.8~2m, 가죽나무는 높이 11m전후, 가슴높이 둘레 1.0~1.6m정도이다. 이 숲의 특징은 다른 마을 숲에서 만나기 어려운 주엽나무가 많은 것이다. 우선 12그루 중 일부 크기를 보면 가슴높이 둘레 240cm에 높이 7.5m, 206m에 7.4m, 193m에 5.3m 등 비교적 굵은 주엽나무가 섞여있다. 조각자(皁角子)로 불리는 열매와 가시가 약용으로 쓰이므로 보호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서 난대림에 속하는 이곳에 상록수가 전혀 없는 것도 특징이다.
숲의 조성유래에 관련하여 소개 입간판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첫째 사창마을에 양곡보관 창고가 있어 이 지역 여러 도서의 양곡을 보관하였는데, 왜구가 침입하여 도적질을 하므로 양곡보관 창고를 은폐하기 위해 위장 숲으로 조성하였다. 둘째 도창마을의 겨울바람을 막기 위하여 방풍림으로 조성하였다. 셋째 풍수지리설로 도창마을이 솥의 형국이고 마을 앞에서 보았을 때 이 숲의 뒤로 보이는 아미산이 말(斗)에다 곡식을 가득히 부어 놓은 형국으로 쌀과 보리 등 식량에 비유된다. 마을 앞 저수지는 식수를 뜻하므로 아미산의 쌀을 저수지물로 씻어서 마을 형국인 솥에다 밥을 할 때 필수적인 것이 땔감인데, 이 숲이 땔감 구실을 해야 마을이 번창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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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여객선 터미널에서 장산도 북강과 축강으로 가는 배가 하루에 4번 정도 있다. 시간이 일정하지 않으므로 조양운수 061-244-0038, 신안해운 061-242-9542에 문의해야 한다. 어느 쪽으로 가든 도착하면 버스가 대기하며 종점이 바로 면소재지인 도창리이다.
전남 기념물 제100호, 1987.01.15지정, 전남 신안군 장산면 도창리 278, GPS N34°38′21.0″ E126°09′03.6″
고흥 월정리 해안방풍림
이 숲은 억센 바닷바람을 막아 농토를 보호하는 해안 방풍림으로 조성되었다. 월정리 선정마을 해안을 따라 길이 400여m, 너비 25m전후의 띠 모양을 이룬다. 모두 137여 그루로서 이팝나무 50, 팽나무 27, 검팽나무 24, 사철나무 21, 느티나무 4, 곰솔 5, 상수리나무 2, 쉬나무 2, 감나무 1, 멀구슬나무 1그루 등이다. 마을 사람들은 큰 느티나무 주위에 단을 세우고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 별신제(別神祭)를 지내면서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한다고 한다.
이 방풍림은 다른 해안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해송은 적고 이팝나무와 팽나무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월정리는 1500년대에 신창 맹씨와 동복 오씨들이 들어와 마을을 이루었다고 하는데, 숲은 당시부터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나무는 죽고 다시 심기를 반복한 탓에 지금 나이는 대체로 1~200년 남짓해 보인다.
특히 이곳에는 굵은 사철나무 두 그루가 눈길을 끈다. 큰 사철나무는 높이 4.5m, 가슴높이 둘레 108cm이며, 좀 작은 사철나무는 높이 3.0m, 흉고 둘레 62cm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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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 고흥을 잇는 4차선 도로, 벌교에서 7km쯤에 동강면 유둔리이고 좌회전하여 다시 7,8km쯤 동쪽으로 직진하면 바닷가에 숲을 만날 수 있다.
전남 기념물 제116호, 1988.12.21지정, 전남 고흥군 남양면 월정리 686, GPS 좌표 : N34°44′55.3″ E127°23′21.6″
함평 양재리 이팝나무
양재리에 사는 모수택씨 소유인 수정재(守靜齋) 뒤편 동산에 두 그루가 남쪽의 넓은 들을 바라보면서 동서로 나란히 서 있다. 두 나무 사이의 간격은 7m이고 가지 펼침은 두 그루를 합쳐서 동서방향 20m, 남북 12m정도이다. 나무의 크기는 큰 나무가 높이 14m, 가슴높이 둘레 3.05m이며, 작은 나무가 높이 12m, 가슴높이 둘레 1.70m로 차이가 크다. 나무의 나이를 추정할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없으나 크기로 보아 큰 나무는 대체로 1800년 전후에 심겨진 것으로 보인다. 작은 나무는 이보다는 조금 늦은 1850년경에 심겨진 것으로 짐작된다.
별 달리 알려진 전설은 없다. 수정제라란 작은 제각이 세워질 때 심은 나무로 추정할 뿐이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이 이팝나무도 꽃이 많이 피고 적게 피는 것으로써 그해 농사의 풍년과 흉년을 점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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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고속도로 함평IC를 빠져나와 서해 쪽인 손불면으로 들어간다. 손불에서 3km쯤 손불교를 건너자 마자 바로 좌회전하면 손불서초등학교다. 학교를 지나 왼쪽 들판으로 난 농로를 따라 들어가면 T자형 도로 끝에 수정재가 보이고 나무는 바로 뒤 언덕에 있다.
전남 기념물 제117호, 1988.12.21지정, 전남 함평군 손불면 양재리 산96-1, GPS 좌표 : N35°09′24.2″ E126°24′47.1″
영광 법성리 느티나무
법성포에서 홍농으로 넘어 가는 고갯마루 도로 양쪽 능선에 느티나무로 이루어진 인공 숲을 말하며 ‘숲정이’라고도 부른다. 면적 약 5.000㎡에 이르고 부용교란 육교를 중심으로 서편에는 느티나무 75그루, 개서어나무 9그루 등 84그루가 자라고 있으며, 부용교 동편에는 느티나무 52그루, 개서어나무 2그루, 팽나무 3그루가 자라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는 느티나무가 127그루로 90%를 차지하고 있다.
나무높이 19m∼23m, 가슴높이 둘레 0.65m∼4.20m에 이르고 있으나 1m∼2.5m짜리가 가장 많아 70%를 차지하고 있다. 둘레 3m 이상인 것은 32그루로서 23%이며, 둘레 4m가 넘는 것은 2그루 정도이다.
나무 나이는 10여년부터 300여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100여년 전후가 가장 많다. 이 숲은 중종 9년(1514) 법성진성을 축조할 때 심었다고 전해지지만, 나무의 크기로 보아서는 당시의 나무가 고목이 되어 죽고 1800년 전후 후계목으로 다시 심은 것으로 짐작된다. 법성포 앞바다(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막기 위한 방풍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법성면민의 휴양림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5월 5일 단옷날에는 그네뛰기 대회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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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비로 유명한 법성포구 동편 고개 마루에 있다.
전남 기념물 제118호, 1988.12.21지정, 전남 영광군 법성읍 법성리 821-1, GPS 좌표 : N35°21′44.9″ E126°26′42.2″
순천 낙안읍성 노거수
낙안읍성 노거수들은 낙안읍성 성벽과 성안에 심어진 15 그루의 나무들을 말한다. 객사 뒤 쪽 길이 약 150m에 이르는 성벽에는 팽나무 5주, 푸조나무 2주, 개서어나무 2주, 느티나무 1주 등 10주의 노거수가 있다. 푸조나무는 높이 18m, 가슴높이 둘레 2.95m, 느티나무는 높이 17m, 가슴높이 둘레 3.76m, 개서어나무는 높이 15m에 가슴높이 둘레 2.14m, 팽나무는 높이 14m, 둘레 4.45m에 이르고 있다.
객사 동쪽에는 높이 13m, 가슴높이 둘레 3.34m에 이르는 팽나무 1주가 있고, 객사 뒤 마당에는 높이 23m, 줄기 밑 부분 둘레 6.4m에 이르는 큰 푸조나무가 있다. 동문에서 남서쪽 50m 거리와 객사 남서쪽 130m거리에 각각 은행나무가 한 그루씩 심어져 있는데, 객사 남서쪽에 있는 은행나무는 높이가 28m, 가슴 높이 둘레 10.2m에 이르고 있다.
이렇게 자라는 노거수의 크기는 다양하며 나이 200년 이상으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가슴높이 둘레 3m 이상 되는 팽나무 5주, 은행나무 2주, 느티나무 1주, 푸조나무 2주 등이다. 3백년 이상은 푸조나무 1주, 팽나무 1주, 은행나무 2주 정도로 추측된다. 낙안성을 쌓은 것은 인조 4년(1626)이므로 당시에 심은 나무 일부도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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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읍에서 857도로를 타고 북으로 7km쯤에 있는 낙안 민속마을 안에 나무가 자란다.
전남 기념물 제133호, 1990.12.05지정, 전남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 GPS 좌표 : N34°54′11.6″ E127°20′36.4″
담양 경상리 느티나무
마을 남쪽 경사진 산비탈의 대나무 숲 한쪽에서 자라고 있다. 높이 35m, 가슴높이 둘레 7.89m에 이르며 나무의 상태는 비교적 건강하다. 대체로 1500년경부터 자라는 것으로 짐작한다. 12mm광각렌즈로도 한 화면에 나무 전체를 담을 수 없을 만큼 나무 가까이까지 대나무가 완전히 둘러쌌다.
오래 전부터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여겨져서 매년 정월 대보름에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나무의 북동쪽에는 돌로 쌓은 단이 있고, 줄기 옆에는 제물을 놓는 상석이 있다. 원래 대나무 숲 주변이 마을이었으나 한국전쟁 당시 불에 타버려 지금처럼 낮은 지대로 마을을 옮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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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고속도로 창평IC에 내려 광주 쪽으로 4km쯤 올라오다 광주호로 들어가는 887번 도로로 좌회전 한다. 광주호와 동복호로 향하는 길이다. 남면소재지를 지나 다시 2km쯤에서 경상리로 들어가는 마을길로 우회전한다. 작은 개천을 따라 2km쯤에서 다시 좌회전하여 경사진 농로를 따라 올라가면 막다른 길 끝에 나무가 있다.
전남 기념물 제141호, 1992.03.09지정, 전남 담양군 남면 경상리 365, GPS 좌표 : N35°09′20.7″ E127°02′47.2″
해남 송호리 해송림
해남반도의 끝자락 땅끝은 우리 국토의 맨 남쪽이다. 송호리의 이 곰솔 숲은 잘 알려진 땅끝 마을보다 조금 위쪽, 송호해수욕장을 둘러싸고 있다. 길이 2km쯤의 해수욕장 백사장 뒤로 도로와 사이에 10~15m의 폭으로 조성되어 있다. 면적은 16,474m²(4,893평)이다.
해수욕장은 수심이 얕고 경사가 완만하며 물결이 잔잔해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다. 썰물 때면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울 만큼 넓은 모래 운동장이 특징이다. 나무는 다른 나무가 섞이지 않는 곰솔 단순림이 약간 언덕을 이루어 자라고 있다. 모두 640여 그루에 이르며 높이 10∼18m, 둘레 120∼270㎝에 이fms다. 나이는 50~100년 정도가 대부분이며 나이 많은 나무는 200여년에 이르기도 한다.
아주 옛날부터 마을을 지켜주는 숲으로 마을 사람들이 아끼고 가꾸어 왔다. 숲이 있어야만 짠물 바람이 마을의 농작물을 보호해 줄 수 있고, 억센 바닷바람을 막을 수 있어서다. 지금은 반달형의 아름다운 숲이 마을의 풍광을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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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읍에서 13번 국도를 타고 완도 쪽으로 20km 정도 내려가면 오른 편으로 땅끝 마을 안내표지판이 나온다. 우회전하여 806번 도로로 송지면소재지를 지나 7km 쯤 더 가면 송호해수욕장이다.
전남 기념물 제142호, 1992.03.09지정, 전남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 산9, GPS 좌표 : N34°18′45.4″ E126°31′14.7″
벌교 고읍리 은행나무
이 은행나무는 1962.12.03 천연기념물 90호로 지정되어 보호되어 오다가 1980년경 나무에 불이나 원형이 훼손되었다하여 1993년 전남기념물로 격하되었다. 나무 높이는 40m, 둘레가 10m정도이며 1500년경부터 자라는 것으로 짐작한다. 암나무이다.
원줄기가 불타고 밑에서 새로 난 싹이 자라 원줄기와 가지를 구별하기조차 어렵다. 나무는 마을 가운데 밀집된 농가 사이에, 10여평 남짓한 그야말로 좁디좁은 공간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높다란 곳에 보호 철책을 만들었고 주변은 모두 시멘트 포장되어 있다. 어느 방향에서도 나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없을 만큼 좁은 공간이다. 그래도 문화재란 이름을 붙이려면 공간을 확보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유주(乳柱)가 발달한 나무로 옛 자료에 널리 소개되어 있지만 지금은 맹아가 너무 많이 자라 어디에 유주가 있는지 찾을 수도 없다. 매년 정월 초에 치성을 드리는 당산나무로 지금까지 보호되어 왔다.
찾아가기
보성과 순천을 잇는 2번 도로, 벌교 고흥을 잇는 15번 도로가 마주치는 곳에서 북으로 2km쯤 올라오면 넓은 들판의 야산 쪽 마을 가운데 나무가 자란다.
전남 기념물 제147호, 1994.01.31지정, 전남 보성군 벌교읍 고읍리 799, GPS 좌표 : N34°51′27.5″ E127°18′59.9″
무안 송현리 곰솔
나무는 원래 4그루가 있었으나 2그루는 죽고 현재 2그루가 만 자라고 있다. 한 그루는 높이 18m이고 줄기 밑 부분부터 갈라졌으며 가슴높이 둘레는 각각 312cm와 292cm이다. 약 5m떨어진 다른 한 그루는 272cm이다. 가지 펼침은 두 나무를 합쳐서 동서 25m, 남북 16m쯤이다. 주위가 넓은 들판이고 바다까지 터여 있어서 나무는 훨씬 커 보이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김해 김씨가 약 400년 전에 이곳에 정착하면서 몇 그루의 노목 곰솔이 자라는 이 숲을 서낭림으로 정하고 매년 초 마을의 평화와 풍년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냈다고 한다. 원래 있던 나무로 보기는 어렵고, 지금의 곰솔은 대체로 1700년 전후부터 자라는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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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해제를 잇는 77번 도로 망운에서 약 4km쯤에 두모마을로 들어가는 좁은 마을길이 있다. 우회전하여 77번 도로에서 약 300m, 마을 뒤편 약간 높은 평지 밭 가운데에서 나무를 만날 수 있다.
전남 기념물 제148호, 1994.01.31지정, 전남 무안군 망운면 송현리 290, GPS 좌표 : N35°00′13.8″ E126°22′10.2″
나주 용곡리 이팝나무
이 이팝나무는 용곡리 월곡마을의 한 가운데 느티나무 고목 한그루와 10여m쯤 떨어져, 서로 수관을 공유하면서 자란다. 두 나무를 묶어 90cm 높이 축대를 쌓고 마을의 쉼터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나무 높이 14m, 가슴높이 둘레 350cm이며 가지 펼침은 동서방향 13m, 남북 11m정도이다. 최근 태풍으로 주간의 위 부분과 굵은 가지가 분질러져 버려 나무의 모양은 많이 훼손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이팝나무 특유의 단아한 모양새는 잃지 않고 있다. 약간 복토가 되었고 나무와 거의 붙어 폐 농가가 있어서 경관을 헤치고 있다. 줄기에는 예의 충전처리를 하였고 나무의 생육상태는 아직 괜찮은 편이다. 나무의 유래는 1590년대 초 성균관 생원이었던 배진(裴縉)이란 사람이 대구 달성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왔는데, 당시에 심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의 나이는 400년 정도이다. 5월 6일 경 꽃이 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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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의 남쪽 옛 영산포에서 장흥으로 내려가는 23번 4차선도로를 2km쯤 달리다가 818번 도로로 바꾸어 탄다. 약 9km쯤에 55번 도로와 마주치는 봉황논공단지 3거리가 있다. 우회전하여 500m쯤 왼쪽에 미륵사로 들어가는 도로가 보인다. 좌회전하여 잠시면 미륵사 입구이고 옆에 저수지가 있다. 저수지 왼편으로 난 좁은 농로를 타고 작은 고개 하나를 넘으면 마을 가운데서 느티나무와 같이 자라는 이팝나무를 만날 수 있다.
전남 기념물 제163호, 1997.05.15지정, 전남 나주시 봉황면 용곡리 676외, GPS 좌표 : N34°55′51.5″ E126°47′23.9″
여수 호명동 방재수림대
이 방재수림대(防災樹林帶)는 말 그대로 마을에 재난이 닥치는 것을 막을 목적으로 심은 숲이다. 마을 앞을 남동쪽에서 북서쪽으로 흐르고 있는 좁다란 개울 양편에 줄줄이 심어져 있으며, 그 길이는 약 450m에 이른다. 이 방재수림대는 입간판 자료에 따르면 푸조나무 50그루, 팽나무 8그루, 느티나무 11그루, 개서어나무 5그루, 참느릅나무 2그루, 말채나무 2그루 등 78그루라고 한다.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8m에서 16m에 이르며 줄기의 가슴높이 둘레는 0.6m에서 4.5m에 이른다.
마을은 바다와 가깝지만 남북으로 제법 높은 산이 있어서 바닷바람의 직접적인 피해는 없는 곳이다. 방풍림의 목적보다는 비보(裨補)의 목적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전해내려 오는 전설에도 호명(虎鳴)마을의 형국이 호랑이상이지만 꼬리가 없다하여 지금부터 약 400여년 전에 마을 사람들이 시내를 따라 호랑이 꼬리 모양으로 기다랗게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살아 있는 나무는 그 크기로 보아 대부분 100년에서 200년생이고, 최대 300년까지도 있다.
개울 양옆으로 시멘트 축대를 쌓았으며 마을 쪽은 포장도로가 나이 있다. 또 2006년에는 개울 밑바닥도 시멘트로 발라두었다. 나무는 복토와 뿌리 뻗음이 어려워 상태가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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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돌산도로 내려가는 17번 도로를 탄다. 여수 시내로 들어가기 바로 전 왼편으로 77번 도로로 갈라진다. 여기서 좌회전하여 약 6km쯤 들판의 오른 쪽 마을 앞 숲이 보인다.
전남 기념물 제164호,1997.05.15지정, 전남 여수시 호명동 528외, GPS 좌표 : N34°48′39.9″ E127°43′59.2″
담양 원율리 오평마을 왕버들나무
오평마을은 마치 자라가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하여 자라 오(鰲)자를 써서 오평이라 한다. 마을의 서쪽, 논과 하천 사이에 5그루의 왕버들이 남북 방향으로 70m에 걸쳐 심어져 있었는데, 두 그루가 죽고 지금은 3그루만 남아 있다. 일렬로 심어진 것으로 보아 바람과 홍수로부터 농작물을 보호할 목적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가장 큰 나무의 높이가 26m, 가슴높이 둘레가 4.6m로 3그루가 대체로 고른 크기로 자라고 있다. 나이는 1700년경부터 자라는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나무에 공동이 생긴 부분은 2005년 4천만 원의 거금을 들여 충전처리를 하였다고 한다.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 나무의 생육에 도움은커녕 오히려 해가 되는 충전처리를, 관련 업자들의 논리에 따라 ‘나무 외과수술’이란 이름으로 거금을 낭비하면서 지금도 성행하고 있는 현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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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에서 순창을 잇는 24번 도로, 담양을 벗어나자 바로 금성면 소재지이다. 여기서 다리를 건너자 바로 넓은 들이며 좌회전하여 마을로 들어간다. 나무는 마을 뒤 담양천 가에 자란다. 접근 농로가 너무 좁아 아차!하면 차를 빠트리기 십상이다. 마을 앞에 차를 세워두고 걸이 들어가는 것이 좋다.
전남 기념물 제168호, 1998.08.20지정, 전남 담양군 금성면 원율리 543-2, GPS 좌표 : N35°20′47.2″ E127°01′471.3″
무안 석용리 곰솔
마을 앞의 당산목이 수백 년을 살아남는 데는 나름대로 보호 받을 이유가 있어야 한다. 마을 어른들은 나름대로 나무의 중요성을 여러 방법으로 강조하였다. 그 중의 하나가 ‘공갈요법’이다. 나무를 건드리면 죽는다거나 동티가 난다는 것이다. 이 나무는 너무나 직설적으로 동티가 어떻게 나는 지를 소개 입간판에다 적나라하게 적어 놓았다.
‘마을 주민 한 사람이 쟁기용으로 쓰기 위해 나뭇가지를 베었다가 음부에 종기가 나서 3년간 고생하다 죽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마을에는 전염병이 자주 돌았는데 사람들이 나무에다 정성을 다하여 제사를 모시자 마을이 편안해 졌다고 한다. 이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신목이라고 생각하여 해마다 음력 2월 초하루 당산제를 지내오고 있다. 감정(甘井)이란 마을 이름은 1763년 경 노스님이 이곳을 지나다 물맛을 보고 지어준 이름이라 한다.
나무는 마을회관 바로 앞에 자라며, 높이 11m, 가슴높이 둘레 3.1m, 가지 펼침 남북방향 20m, 동서 16m이고 남쪽으로의 가지 펼침이 가장 길다. 줄기 밑 부분 기준 2.5m 높이에서 큰 가지가 수평으로 발달하여 전체적인 나무 모양은 밑변이 넓은 삼각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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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에서 77번 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한참을 들어가면 해제읍이다. 여기서 우회전하여 805도로를 탄다. 약 5km 오른쪽에 감정 저수지란 자그마한 저수지가 있고 나무는 저수지 둑을 따라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 도로에서 보이는 위치에 있다.
전남 기념물 제175호,1999.11.20지정, 전남 무안군 해제면 석용리 843번지 외(감정마을), GPS 좌표 : N35°07′01.8″ E126°15′42.2″
무안 용정리 곰솔
바다와 불과 2~30m의 거리를 두고 자란다. 나무는 줄기 밑 부분부터 둘로 갈라져 자라며 굵은 뿌리가 노출되어 마치 작은 용들이 꿈틀대고 있은 듯하다. 나무 높이 18m, 큰 줄기는 가슴높이 둘레 3.7m, 작은 줄기는 2.3m이다. 가지 펼침은 남북방향 20m, 동서 17m정도이다. 대체로 1700년경부터 자라는 것으로 짐작된다.
땅에서 높이 3m쯤부터 가지가 나와 옆으로 뻗으면서 밑으로 처지는 형태로 자란다. 마치 처진소나무를 보는 느낌이며 주위에 다른 건물이나 쿤 나무가 없어서 아름다운 모습이 한층 돋보인다. 밑 부분의 가지 일부가 죽은 것 외에는 나무의 자람 상태가 매우 좋은 편이다. 당산목으로 보호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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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현경을 잇는 60번 도로를 타고 현경읍에서 해제 지도 쪽으로 5km쯤에 오른 쪽으로 용정리 달머리(月頭)마을로 들어가는 도로가 있다. 우회전하여 4km쯤, 작은 반도의 끝자락 밭 가운데에 나무가 자란다.
전남 기념물 제176호, 1999.11.20지정, 전남 무안군 현경면 용정리 35-9번지(월두마을), GPS 좌표 : N35°04′50.2″ E126°23′15.9″
영암 양장리 곰솔
이 일대는 영산강 하류로서 영암천과 학산천이 만나는 곳이며 넓은 평야가 펼쳐진다. 마을 뒤 길게 뻗은 야트막한 언덕배기에는 옛날에는 길게 이어진 곰솔 숲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서해의 바닷바람을 막아주고 마을을 지키는 숲으로 오랫동안 보호되어 오다가, 지금은 지정된 곰솔 한 그루와 바로 옆에 약간 굵기가 작은 또 다른 곰솔 한 그루만 고목으로 남아있고 지금의 여러 그루의 곰솔은 어린 나무들이다.
기념물 곰솔의 높이는 14m, 가슴높이 둘레 4m, 가지 펼침은 동서방향 25m, 남북 27m에 이른다. 줄기는 2m높이에서 3개의 굵은 가지로 갈라지고 올라가면서 다시 여럿으로 갈라져 가지는 이리저리 휘어진다. 기괴한 모양의 가지 뻗음이 아름답고 전체적인 나무 모양은 둥그스름하다. 10여m쯤 떨어진 곳에는 굵기가 약 3m정도에 지정 곰솔보다는 굵기가 약간 가는 또 다른 곰솔이 한 그루 같이 자란다. 수관을 공유하고 있으며 역시 셋으로 갈라져 있다.
광복 이전까지 매년 정월 대보름에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냈던 의미 있는 나무이고, 서북풍을 막아주는 방풍방조림(防風防潮林)의 기능을 하던 고마운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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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에서 왕인박사 유적지 쪽으로 819번 4차선 도로를 타고 가다 유적입구인 신흥로타리에서 내려 우회전한다. 금방 또 다시 우회전하여 821번 도로 학파방조제 방향 6km쯤의 왼편 마을 뒤 언덕에 나무가 보인다.
전남 기념물 제182호, 2000.12.13지정, 전남 영암군 군서면 양장리 485, GPS 좌표 : N34°46′59.3″ E126°36′23.1″
순천 평촌리 이팝나무
순천 평촌리 이팝나무는 농소마을 뒷산에서 마을 앞으로 흐르고 있는 좁다란 개울가에 심어져 있다. 지상 1.6m 정도에서 굵은 가지가 3개로 갈라져 크고 아름다운 모습을 형성하고 있으며 나무의 성장도 건강한 편이다. 높이 13m, 가슴높이 줄기둘레 3.5m에 이르는 큰 나무이다. 가지 펼침은 동서방향 23m, 남북18m로 땅에 붙다시피 동쪽으로 뻗은 가지의 꽃이 더욱 아름답다.
이 나무는 1600년 경 농소마을이 생기면서 심은 나무로 전해지고 있어서 나이는 약 400년쯤으로 짐작한다. 옛날 이 마을에 극심한 가뭄이 들어 모든 나무가 말라 죽었으나 이 나무만은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전설이 있다. 몇 년 전까지 정월 대보름날에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당제를 지내던 당산목이었으나 지금은 지내지 않고 정자나무의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5월 10일 전후 꽃이 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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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과 구례를 잇는 17번 도로를 달리다 보면 순천기점 20여km쯤에 황전면 소재지다. 전라선 괴목역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서 우회전하여 840번 도로를 타고 약 5km쯤 왼쪽에 농소 마을이 있고 나무는 마을 앞 들판에 자란다.
전남 기념물 제184호, 2001.06.05지정, 전남 순천시 황전면 평촌리 784, GPS 좌표 : N35°04′40.2″ E127°27′55.5″
순천 낙안 교촌리 은행나무
이 은행나무는 낙안읍성 민속마을로부터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낙안향교 명륜당 뒷마당 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낙안향교는 원래 읍성의 동쪽 농암동에 있었는데, 효종 9년(1658)경에 이곳으로 옮긴 후 여러 차례 고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은행나무는 향교를 옮겨 세울 당시에 심은 것으로 여겨지므로 지금 나이는 350년을 넘었다.
향교의 강학(講學)공간인 명륜당 오른쪽에 있는 이 은행나무는 높이 25m, 가슴높이 둘레 8.2m에 이르는 암나무다. 가지 펼침은 동서방향 20.1m, 남북 17.5m에 이른다. 땅위 2.5m부위에서 3개의 줄기로 갈라졌는데, 동쪽의 작은 가지 2개는 잘려져서 고사상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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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읍에서 857도로를 타고 북으로 7km쯤에 있는 낙안 민속마을 직전, 낙안향교가 있고 나무는 향교 안에 자란다.
전남 기념물 제185호, 2001.09.27지정, 전남 순천시 낙안면 교촌리 222, GPS 좌표 : N34°53′50.3″ E127°20′51.1″
고흥 옥하리 곰솔
이 곰솔은 높이 14m, 가슴높이 둘레 약 400㎝이다. 흥양현 읍성(전남 기념물 제35호)터의 경사면에 자란다. 20여 그루의 곰솔과 함께 있으며 주위에는 멀구슬나무, 옻나무, 예덕나무, 산초나무, 밤나무, 마삭줄 등이 뒤섞여 있다. 이 노거수 바로 밑에 100여 년 전 영광군수를 지낸 김정태가 취송정이라는 정자를 지어 나무는 취송정 구내에 있다. 흥양현 읍성의 형성시기와 나무의 규모 등으로 보아 1700년경부터 자라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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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군청 뒤쪽 경사지에 자리 잡은 취송정 뒤에 자란다.
전남 기념물 제211호, 2002.11.27지정, 전남 고흥군 고흥읍 옥하리 145-8, GPS 좌표 : N34°36′35.2″ E127°17′16.3″
고흥 관리 탑상골 곰솔
이 곰솔은 높이 20m, 가슴높이 둘레 450cm, 줄기 밑 부분 둘레 600cm, 가지 펼침은 24~31m나 된다. ‘관리’는 조선시대 도양목장 감독관이 주둔하는 관청이 있는 마을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때 기념식수로 2그루를 심었으나 지금은 한 그루만 남아 보호 받고 있다. 나무는 이웃 마을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 자라며 가지가 사방으로 고르게 뻗어 웅장하고 위엄이 있어 보인다. 인근 4개 마을이 공동으로 정월 대보름이면 제를 올리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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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에서 소록도로 내려가는 4차선 도로를 달리다 도양읍 경계에서 구 도로로 빠진다. 관리 탑상골 높은 언덕에 나무가 자란다.
전남 기념물 제212호, 2002.11.27지정, 전남 고흥군 도양읍 관리 991외
고흥 금사리 은행나무
이 나무는 고흥 팔영산 끝자락 해안가인 금사리 사두마을 뒤편 급경사 언덕배기에 자란다. 사두마을은 조선시대 때 사도진이란 해군기지가 있던 유서 깊은 곳으로서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도 지명이 나온다.
사두란 사도(蛇島)란 말에서 변형된 것이다. 마을 형태가 뱀머리 모양인데, 바로 앞에 개구리 형상을 한 와도(蛙島)를 넘보고 있는 모습이라 하여 이렇게 불렀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에 사도진은 수군요새지로 5관5포 중에 한 곳이다.
이 은행나무는 조선 성종 22년(1491) 사도진 설치 당시 심었다고 전해지므로 나이는 약 600년으로 짐작된다. 나무 높이 20.8m, 뿌리목 둘레 10m, 가슴높이 둘레 9m이르는 거대한 나무다. 줄기가 남쪽으로 약 20°정도 기울어져 비스듬하게 자라며 북쪽의 맹아가지 하나가 곧게 서 있고 가슴둘레는 250cm정도 된다. 가지 펼침은 동서방향 19m, 남북 23m 정도이다. 나무의 곳곳에 가지를 잘라낸 흔적이 보이는 데, 바람이 센 곳이라 자주 분질러진 탓이라 한다. 매년 섣달그믐이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당이기도 하며 나무 밑은 주민들의 쉼터이다. 암나무이다.
나무 뒤편으로는 최고 줄기 둘레 80cm에 펼쳐진 수관은 가로2.5m, 세로 3.2m에 이르는 송악이 자란다. 은행나무와 함께 귀중하게 보존되어야 할 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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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와 고흥을 잇는 4차선 도로를 탄다. 약 15km쯤에 팔영산으로 들어가는 843번 도로로 빠진다. 팔영산 뒤편으로 난 도로를 타고 해안 쪽으로 달리다 보면 간척지가 나오고 영남면으로 들어가는 77번 도로와 마주친다. 사도리는 영남면사무소 마을을 가기 전 우회전하여 해안선을 따라 잠시 들어가면 만날 수 있다.
전남 기념물 제213호, 2002.11.27지정, 전남 고흥군 영남면 금사리 770-1외, GPS 좌표 : N34°34′52.0″ E127°25′08.1″
고흥 대강리 느티나무
이곳 느티나무는 자그마한 묘를 가운데 두고 동서로 한 그루씩 두 그루이다. 오른 쪽 큰 나무는 높이 13m, 가슴높이 둘레 7.4m, 줄기 밑 부분 둘레 11.0m, 가지 펼침은 동서방향 21m, 남북 27m 정도이다. 왼쪽 나무는 높이 12m, 가슴높이 둘레 6.0m, 줄기 밑 부분 둘레 6.8m, 가지 펼침은 동서방향 22m, 남북 24m 정도이다.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강제 개편 전에는 대강면 소재지 마을로 사동, 사서, 두산, 평촌 4개 마을에서 함께 당산제를 모시는 곳이었다. 나무 주위를 석축으로 쌓아 보호 관리되고 있으며, ‘마을 유래지’에 적힌 이 마을에 처음 사람이 들어와 사는 년도는 약 1600년 경이고 나무도 이때 심은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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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 4거리에서 15번 도로를 타고 고흥 쪽으로 6km쯤 내려오면 동강면 소재지이다. 여기서 20번 지방도를 잠시 탔다가 바로 우회전하여 잠시 올라가면 마을입구에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자란다.
전남 기념물 제214호, 2002.11.27 지정, 전남 고흥군 동강면 대강리 276, GPS 좌표 : N34°47′09.8″ E127°197′40.4″
영광 군서 회화나무
이 회화나무는 가사리에 1그루(A목), 남죽리에 2그루(B목, C목)가 있다. A목은 높이 12m정도이며, 둘레 가슴높이 둘레 390㎝이며 가지 펼침은 동서방향 11m, 남북 14m정도이다. B목은 높이 14∼15m, C목은 높이 10∼11m전후이다.
가사리는 1597년경 김해김씨가 이곳으로 이사와 살면서부터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가장골·가시리라고도 불린다. 이 회화나무는 국가 비운의 전쟁 때는 잎이 피지 않고 말라 죽은 것처럼 보이다가, 전쟁이 끝나면 다시 잎이 푸르러지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전한다. 이 나무 옆 우물을 마시면 힘센 장사가 태어난다고 하여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 이 우물이 매몰된 후부터는 장사가 나오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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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와 법성포를 잇는 22번 도로, 영광읍을 우회하는 종산 사거리에서 808번 도로로 좌회전한다. 약 1km쯤에서 다시 좌회전하여 마을 입구를 찾는다. 나무는 마을 가운데에 자란다.
전남 기념물 제215호, 2002.11.27지정, 전남 영광군 군서면 가사리 314-1외, GPS 좌표 : N35°14′49.5″ E126°29′44.0″
진도 초하리 무환자나무
초사리는 초상, 초하, 초평 등 4개의 자연마을을 합쳐서 부르는 행정구역 명칭으로서 도로 표지판은 초하를 찾아야 한다. 나무는 묘소 옆에 덩그러니 홀로 서 있다. 줄기 밑 부분 둘레 468㎝, 가슴높이 388㎝, 높이 18m쯤 되어 보이는 큰 나무이다. 가지 퍼짐은 동서 방향 9m, 남북 7m정도에 불과하여 나무는 수관의 피해가 심하였을 알 수 있다.
줄기는 땅위 3.5m쯤에서 3개의 가지로 갈라지고 올라가면서 몇 개의 가지로 다시 갈라지지만, 굵은 가지가 아니다. 줄기의 위 부분이 분질러지거나 상해를 입어, 맹아가 돋아나 수관을 새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나무의 굵기에 비해 수관이 빈약하여 고목으로서의 장엄함을 찾을 수 없다. 그래도 무환자나무로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굵은 나무이다.
나무 나이를 알 수 있는 아무런 자료가 없으나 굵기 등을 감안할 때 약 600여년으로 짐작된다. 나무가 제대로 수관을 형성하고 있을 때는 정월대보름 이 나무 밑에서 달이 떠오르는 모습을 보고 그 해의 풍년과 흉년을 점쳐 보기도 하였다고 한다. 무환자나무 열매는 옛날 비누 대용품으로 이용했고, 염주를 만들어 불공을 드리면 사찰이 번영한다고 하여 마을 사람들과 부근 절의 스님들은 이 나무에 많은 정성을 들였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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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읍에서 동쪽의 운림산방으로 들어가는 길로 달리다가 의신면 쪽으로 곧장 내려간다. 의신면소재지에서 18번 도로를 타고 가다 ‘신비의 바닷길’에 조금 못 미쳐 약 7km쯤 왼편에 초사리 초하마을을 만난다. 나무는 마을 입구에서 농로를 따라 100m쯤, 나지막한 야산 자락 양천 허씨 묘소 옆에서 만날 수 있다.
전남 기념물 제216호, 2002.11.27지정, 전남 진도군 의신면 초사리 산41-1, GPS 좌표 : N34°25′17.8″ E126°20′12.7″
진도 석교리 목련
석교초등학교 옆을 흐르는 석교천에 축대를 쌓아 만든 운동장의 동편 끝에 나무가 자란다. 양 옆 10여m에 팽나무 와 상수리나무 한 그루를 거느리고 있다. 줄기 밑 부분 둘레는 275cm이고 땅위 65cm쯤에서 줄기가 두 갈래로 갈라진다. 각각 줄기는 다시 1.2m쯤 높이에서 각각 또 둘로 갈라지며 동쪽 줄기는 각각 둘레 127 및 130cm이며, 서쪽 줄기도 103 및 163cm 굵기이다. 위로 올라가면서 많은 가지가 뻗어 나무는 부채꼴 모양의 아름다운 모습을 나타낸다. 가지 펼침은 동서 및 남북방향 모두 11m 정도이고, 높이는 약 12m쯤이다.
나무는 1920년 개교할 당시에 심은 것으로 짐작된다. 당시에 약간 굵은 나무를 심었을 터이니 나이는 현재 약 100년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나무의 종류는 백목련으로 알려졌으나 필자가 2008년 4월 4일 꽃을 관찰한 결과 목련임이 밝혀졌다. 목련은 우리나라 제주도부터 일본에 걸쳐 자라는 나무이므로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가져다 심었거나, 아니면 제주도 나무일 가능성도 있다. 목련으로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나무로 생각되며 나이도 가장 오래된 것이다. 학교에는 목련관을 신축하고 매년 4월초에 목련제를 지내면서 나무를 아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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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에서 18번 도로를 타고 팽목 항으로 15km쯤 달리면 임회면 소재지이고, 마을 남쪽에 8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석교초등학교가 있으며 나무는 운동장 동편에 자란다.
전남 기념물 제217호, 2002.11.27지정, 전남 진도군 임회면 석교리 416, GPS 좌표 : N34°24′06.2″ E126°11′38.6″
화순 이서 야사리 느티나무
이곳 느티나무는 동면중학교 이서분교 운동장 가운데 2그루가 10여m의 간격을 두고 나란히 붙어 한 나무처럼 자란다. 두 나무는 크기가 비슷하며 높이는 23~25m, 가슴높이 둘레는 4.9~5.3m, 가지 펼침은 14~19m정도이다. 대체로 1700년경부터 자라고 있는 것으로 짐작한다.
학교 운동장을 조성할 때 나무보다 낮게 땅을 파낸 탓에 나무는 뿌리부분이 1m쯤 올라와 있고 상당히 노출되어 있으나 생장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원래 마을 당제를 모시는 나무로 지금까지 보호 받아온 것으로 짐작한다. 이 두 그루는 할머니 당산나무이고 할아버지 당산나무는 남쪽에 따로 있었으나 고목으로 고사하였다. 이 일대는 무등산에서 발원한 영신천을 따라 주변에 자연 촌락이 형성되었고 대체로 1500년경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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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고속도로 창평IC에 내려 광주 쪽으로 4km쯤 올라오다 광주호로 들어가는 887번 도로로 좌회전 한다. 광주호를 지나 고개를 넘어 한참을 달리면 화순온천으로 들어가는 삼거리다. 동복호 쪽으로 직진하여 동복호 옆길로 5km쯤에 이서면 소재지 야사리다. 나무는 분교 운동장 가운데 자란다.
전남 기념물 제235호, 2005.07.13지정, 전남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197, GPS 좌표 : N35°06′26.2″ E127°04′54.9″
화순 동복 연둔리 숲정이
이 숲은 둔동마을 앞을 흐르는 동복천 가장자리를 따라 길게 조성되어 있다. 옛날 마을 사람들은 농사용 수원 확보를 위하여 둔동 보(洑)를 만들고 1500년 경 마을을 개척하면서 홍수와 바람을 막이용 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조사 자료에 따르면 왕버들, 느티나무, 개서어나무, 검팽나무 등 227그루의 고목들이 자란다. 가슴높이 둘레 60cm이하의 어린 나무가 72그루, 가슴높이 둘레 180~250cm가 45그루, 둘레 300cm가 넘는 나무도 10여 그루에 이른다. 500여 년 동안 꾸준히 숲을 가꾸고 죽은 나무 자리에 새 나무를 심어 오늘의 숲이 되었겠지만, 굵은 나무는 당시의 나무가 아닌가 짐작된다. 특히 아래쪽의 왕버들은 둘레가 500cm가 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다른 곳의 어느 왕버들보다 규모가 크다. ‘숲정이’란 마을 근처의 숲을 말하는 순수 우리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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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에서 주암호 쪽, 벌교 고흥으로 내려가는 4차선 도로를 탄다. 남면소재지에서 내려서서 좌회전하여 동복으로 들어가는 822번 도로를 4km쯤 왼쪽에 한창교란 다리가 있고 숲은 연둔리 마을 앞 넓은 개울의 제방 둑을 따라 펼쳐진다.
전남 기념물 제237호, 2006.12.27지정, 전남 화순군 연둔리 472-1외, GPS 좌표 : N35°02′26.4″ E127°07′28.7″
곡성 설옥리 수도암 잣나무
수도암은 신라시대 설두화상이 도를 닦던 곳으로 전해지나 그 당시 건물은 없어지고 1928년 임공덕 보살이 지은 건물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옥과면 소재지인 옥과로부터 북서쪽으로 약 4㎞의 거리에 있는 설산(522m) 남쪽 중턱에 자리잡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설산에 금당사와 나암사가 있다고 하였고, 『여지도서』(1700년대 간행)에서는 설산 바로 밑에 금산암이 있다고 하였으나 이들은 모두 없어졌다. 이러한 기록에서 볼 때 현재의 수도암 자리나 그 근처에 절터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곳 암자에는 큰 잣나무 한 그루가 자란다. 가슴높이 둘레 2.40m, 높이 15m, 가지 펼침은 동서방향 13m, 남북방향 10m정도이고 지하고가 높아 나무는 헌칠하고 크게 보인다. 우리나라 중부지방에서 더 북쪽으로 비교적 추운 곳에 자라는 나무인데, 드물게 이곳 남쪽에 고목이 있다. 관련된 전설은 없으나 굵기로 보아 대체로 나이는 약 150년, 아마 암자를 지을 당시에 자라고 있던 나무를 그대로 지금까지 보존하여 온 것으로 짐작한다.
원래 수도암 마당에는 오래된 매화나무 한 그루도 있었으나 지금은 죽어 없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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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고속도로 옥과IC를 빠져나와 옥과로 들어간다. 읍 입구 학교 옆으로 난 도로로 좌회전하여 아스팔트와 시멘트 도로를 번갈아 가면서 전형적인 시골길을 달린다. 설옥리 마을까지는 약 2.5km이며 평지이다. 마을부터 수도암까지는 임도(林道)로 뚫린 급경사 도로를 2km쯤 올라가야 나무를 만날 수 있다. 경사가 만만치 않다.
전남 문화재자료 제147호, 1987.06.01 지정, 전남 곡성군 옥과면 설옥리 613, GPS 좌표 : N35°17′35.3″ E127°06′21.4″
장흥 묵촌리 동백림
이곳은 묵촌 마을을 흐르는 하천을 따라 동백 숲이 형성되어 있다. 알려지기로는 묵촌 마을은 청룡등이 짧아서 어동리 옹기점의 불길이 마을을 비추면 화를 당한다 하여 이 불빛을 막고자 청룡등 자락과 마을 어귀까지 동백나무 숲, 소나무 숲, 대나무 숲을 조성하였다.
이 동백나무 1974㎡(598평)의 면적에 143그루가 무리지어 자라고 있다. 굵기는 2~30cm에서 굵은 것은 50cm에 이르기도 한다. 높이 7~8m쯤 되며 대체로 1800년경 심겨진 것으로 짐작된다.
하천변 숲정이 조성을 위한 전형적인 식재방법으로 바람, 물살에 버티게 하는 기능으로 심은 것으로 보인다. 19C에 들어서는 동학농민전쟁 때의 접주인 이방언을 기념하는 뜻과 마을 수호의 숲정이로서의 의미도 있다. 송기숙 교수의 대하소설 ‘녹두장군’의 배경이 되기도 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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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강진을 잇는 2번 도로, 장흥을 지나면 금방 마량으로 내려가는 23번 도로와 마주친다. 좌회전하여 내려오다 보면 고개 넘어 약 6km쯤에 용산면 소재지다. 마을을 벗어날 즈음 묵촌으로 들어가는 마을길이 있다.
전남 문화재자료 제268호, 2004.02.13 지정, 전남 장흥군 용산면 접정리(묵촌) 산60-1, GPS 좌표 : N34°36′16.2″ E126°55′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