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각 불사에 즈음하여
( 해인" 98년 3월호)
민족의 위대한 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 경판은 조상의 문화유산으로 뿐만 아니라 각판동기와 그 방대함에 우리 국민 모두 세계만방에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고려 고종 23년(1236)에서 38년(1251)까지 16년에 걸쳐 새겨진 경판이 오늘날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는 것은 기적에 가깝고 부처님의 보살핌이 없었다면 불가능할 것이다. 온갖 국가적 위기에도 용케 남아있는 팔만대장경판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로서는 어떻게 보존하였다가 자손만대에 고스란히 물려줄 것인지 끊임없이 노력하고 연구해야 할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수다라장 지붕의 누수문제가 몇 번 언론에 오르내린 후 갑자기 2월 16일부터 기와 교체 공사를 비롯한 불사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전해듣고 나무의 재질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몇 가지 걱정되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불사의 내용은 수다라장의 서까래와 기와을 교체하고 일부 경판가(經板架)의 보수공사가 포함되어 있다. 장경각은 건조년대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건조년대가 명확하지 않으며 수리기록으로는 조선조 성종 20년(1488)에 대폭 보수공사를 필두로 고종까지 수 차례 있었다. 광복이후에도 1955년 동와(銅瓦)교체공사를 비롯하여 1964년 3월부터 1965년 8월까지 약 1년 반에 걸쳐 수다라장과 법보전의 서까래를 새것으로 바꾸고 다시 비가 새는 부분의 기와를 교체한바 있다. 1972년에는 판가의 일부를 추가 설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번의 불사는 34년만의 대수리에 임하는 중요한 공사이다. 국보가 81,258장이나 보관되어 있는 귀중한 장경각의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시행하려면 먼저 철저한 사전조사가 필수적이다.
기와 교채 공사는 기와종류를 무엇으로 할 것 인지부터 서까래의 재질까지 상세히 검토해야하고 경판의 임시보존대책이 완벽하게 이루진 다음에 수행되어야 한다. 또 경판가 보수공사는 경판하중 때문에 받침목이 빠져 나온 것, 경판가 기둥의 밑 부분이 썩은 것, 사용재목의 두께 결정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는데 이에 대한 사전의 실태조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공사의 진행을 계획하고 있다. 이번 공사의 수행을 위한 시방서를 보면 구체적인 공사계획이 대단히 미흡하다.
서까래는 어떤 것을 사용할지 구체적인 제시가 없다. 동사간장 보수공사에서 나온 서까래를 보면 표면은 멀쩡한데 가운데부분이 완전히 썩어버렸다. 수다라장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보는데 사용할 나무의 종류, 직경, 건조방법, 방수처리 등에 따라 수명이 좌우되는 중요한 인자이다. 시방서에 보면 나무는 육송으로 하고 13%까지 자연건조하며 방충방연처리를 한다는 내용만 있고 구체적인 사항은 아무 것도 명기되지 않았다.
육송의 질도 천차만별인데 품질검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예를 들어 옹이는 몇 개까지 허용하고 나이테넓이는 몇 밀리메타 이하라야 하며 육송인지 아닌 지의 검사는 어떻게 한다 등 구체적인 내용이 있어야 한다. 수 년 전에 서간장의 기둥하나를 교체하였는데 미국원산의 리기다소나무이었다. 이런 예에서 보듯이 엄밀한 검사가 반드시 필요하고 정확을 기하기 위하여는 전문가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서까래로 쓸 재목은 건조기간을 포함하여 적어도 1년 이상의 준비기간이 필요한데 과연 준비가 된 상태에서 착공하는지? 13%로 건조하여 사용한다는데 자연건조로 낮출 수 있는 함수율은 16-7%정도이다. 시방서 대로라면 인공건조를 해야하고 건조방법에 따라 품질에 많은 차이를 나타낸다. 건조를 너무 급격히 하거나 덜 건조된 서까래를 사용하면 갈라지고 비틀어지는 등 완공 후에 곧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서까래의 굵기를 얼마로 할 것인지도 간단히 정할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기와와 함께 서까래가 건물의 기둥에 가해지는 하중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필자의 조사결과 수다라장의 기둥은 잣나무, 소나무, 젓나무,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등 여러 수종으로 구성되고 직경은 평균 38센티메타로서 법보전의 느티나무 단일수종, 평균직경 46센티메타보다 훨씬 가늘다. 기둥의 훼손정도가 심하여 이번 불사에 교체를 하여야 할 기동도 있으며 수종과 부후정도가 기둥마다 달라 하중에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을지 충분한 사전 조사가 필요하다.
방충방연제 도포공사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어떤 약제를 쓰는지 알 수가 없다. 최근 목조주택의 활발한 보급과 함께 방부방충은 물론 발수(拔水)효과까지 나타내는 신개발약제도 상당수 있는데 이의 사용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 목재의 방부방충효과는 약제처리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함수율이다. 함수율이 15%이하에서는 썩거나 벌레 먹는 일이 거의 없으므로 서까래의 충분한 건조와 방수처리가 다른 어떤 약제 처리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마지막으로 거푸집문제도 단순하지 않다. 공사 과정 중에 경판손상가능성은 물론 여름의 태풍계절까지 간다고 보아야 하는데 충분한 검토와 대비가 된 것인지 의심스럽다.
이상 이번 장경각 불사의 문제점을 간단히 알아보았다. 문제는 계획에서 사업의 시행까지 준비기간이 너무 짧아 공사가 졸속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고 우리 나라 제일의 문화재에 대한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하면서 의견수렴과정이 충분하지 않았다. 보다 광범위하게 자문을 구하고 공청회를 열어 문화재관리국에서 미쳐 예견하지 못한 부분을 보완하여 충분한 기술검토를 한 후에 공사에 들어갔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문화재보수공사를 일일이 무슨 공청회까지 열어야 하는 가라는 반론이 있겠으나 이번 불사가 단순한 공사가 아니고 팔만대장경판이라는 너무나 중요한 유물을 보관하고 있는 건물을 대대적으로 수리하는 공사이면서 까다로운 공사이기 때문이다.
당국은 사업을 수행함에 있어 행정의 편의성만 생각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공사의 내용을 공개하고 기와, 목재, 건축 등 관련 분야의 세부전문가를 적극 활용하여 한치의 착오도 없는 보수공사가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