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부처님의 인연
경북대학교 임산공학과 박상진(朴相珍)
나무는 인류가 지구상에 터를 잡기 시작할 때부터 사람들과 수 없는 인연을 맺어왔다. 집을 지어 은신처를 마련하고 불을 지피며 사냥터를 마련하여 주는 등등 나무와 함께 삶을 이어왔다고 하여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처럼 직접적인 생활의 일부로서만이 아니라 원시인들의 정신적인 지주로서 거대한 나무는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중국의 고대 신화에 나오는 항아(姮娥)는 달의 신으로서 서왕모(西王母)가 아끼는 불사약을 훔쳐 달나라로 도망친다. 이 설화는 발전하여 달 속에 계수나무가 있고 토끼가 떡방아를 찧는다는 이야기로 비약한다.
북 구라파의 신화에 나오는 이그드라실(Yggdrasil)이라는 물푸레나무는 삼라만상의 중심으로서 하늘과 지상과 지하를 연결하는 통로이었다. 몇 천년을 거뜬히 사는 나무는 삶의 길이에서 우선 인간을 압도하였고, 사람의 육신이 지상에서의 짧은 삶을 마감하면 땅속으로 들어갔다가 나무 줄기를 타고 하늘 세계로 향한다고 생각하였다.
우리의 삼국유사에 실린 단군신화에도 환웅이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인간을 다스렸다는 내용이 있다. 태백산 꼭대기에서 하늘을 맞닿을 정도로 웅장하게 솟아 있는 박달나무를 상상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태백산은 민족의 영산(靈山)이며 신단수는 하늘에 있는 신의 세계와 인간세계를 영적(靈的)으로 이어주는 연결 축이기도 하다.
계수나무나 물푸레나무, 우리의 박달나무와 같이 신화에 등장하는 나무는 거대하고 웅장하며 오래 살아 경외의 대상이 되었으며 세계수(世界樹)라고 한다. 이런 나무들은 민족에 따라 약간씩 의미가 다르나 생명의 근원이고 우주의 중심으로 인간의 힘이 미치지 않는 신의 세계와의 매개체로 승화되면서 비로소 내세(來世)를 믿는 계기가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종교는 나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부처님과도 수많은 인연을 갖고 있다.
마야왕비와 무우수(無憂樹)
부처님은 억조창생을 구하기 위하여 사바 세상에 오시는 순간부터 가장 먼저 나무와 인연을 맺게 된다. 잉태한 마야왕비는 산월이 가까워지자 친정에 가서 아기를 낳은 나라의 관습에 따라 콜리성으로 길을 떠났다. 가는 길에 룸비니 동산에 이르자 수많은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꽃들이 다투어 피며 뭇 새들의 지저귐이 일행을 축복하였다. 조용히 룸비니 동산의 절경을 감상하던 마야왕비는 아름다움에 홀린 듯 한 나무의 가지에 손을 가져가는 순간 산기를 느끼게 된다.
이때 마야왕비가 붙잡았던 나무-산고의 고통을 덜게 한 이 나무를 우리는 무우수라고 한다. 룸비니 동산이 아열대 지방이니 우리나라에서는 온실이 아니면 자랄 수 없다. 무우수가 무엇일까? 인도에서 일반인들이 부르는 이름은 아쇼카Ashoka나무이다.
잎이 늘푸른 아열대 지방 나무로서 마치 고무나무 잎사귀처럼 도톰한 긴 타원형의 잎을 가지고 있고 짙푸른 잎사귀를 배경으로 소복하게 피는 자주 빛 꽃이 특히 아름다워 당연히 마야부인의 눈에 띄었고 수많은 나무 중에 최고의 영광을 얻게 되었다. 다시 부처님은 29세 때 고(苦)의 본질 추구와 해탈을 구하고자,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하시면서 또 나무와 인연을 갖게 된다.
보리수(菩提樹)=피나무?
잘 알려진 대로 부처님은 보리수 아래에서 6년 간에 걸쳐 깊은 사색에 정진하여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다. 이 때 부처님이 도를 깨우친 인도보리수는 아열대 지방에 자라는 뽕나무무리의 무화과 종류에 포함되는 나무로서 높이가 수 십 미터, 지름이 두세 아름씩이나 되는 큰 상록수이다. 가지가 넓게 뻗고 공기뿌리가 주렁주렁 달려 한 포기가 작은 숲을 이룰 정도로 무성하게 자란다. 이 나무를 인도에서는 피팔라(Pippala) 혹은 보(Bo)라고도 하였는데 중국에 불교가 들어오면서 한자로 번역할 때 소리 음을 그대로 따서 보리수라는 이름이 생겼다.
그러나 중국이나 우리나라에는 진짜 부처님이 도를 깨우친 인도보리수는 추워서 자랄 수 없으므로 불자들에게 대용 나무가 필요하였다. 이에 스님들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산에서 만나는 피나무를 선택하여 부처님이 득도한 나무와 꼭 같은 보리수란 이름을 붙이고 널리 심기 시작하였다.
왜 많은 나무 중에 하필이면 피나무 무리를 인도보리수의 대용나무로 선택하였을까? 피나무는 나무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잎이 심장모양으로 인도보리수와 매우 흡사하며 단단하고 새까만 열매가 수없이 달려서 염주로 쓸 수 있고 따뜻한 지방에서 추운 지방까지 가리지 않고 잘 자라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산에는 예부터 보리수(甫里樹)란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잠깐 역사 기록을 보면 연산6년 전라감사에게 이르기를, ‘보리수 열매를 익은 다음에 봉하여 올려보내라’라는 조선왕조실록 내용처럼 남쪽 섬 지방을 중심으로 열매를 먹는 보리수가 자라고 있었다. 육지에도 비슷한 나무가 있는데 이 역시 보리수로 불리게 되었다.
그래서 보리수라고 하면 부처님의 인도보리수, 피나무 보리수, 열매를 먹는 보리수, 심지어 슈베르트 가곡에 나오는 보리수까지 보는 이의 입장에 따라 뒤섞여있다. 우리나라의 불자들은 피나무 보리수를 오랫동안 부처님의 보리수로 알아왔으니 지금 와서 ‘가짜 보리수’라고 탓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언제부터 우리나라 절에 피나무 보리수를 심기 시작하였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고려사에 보면 ‘명종11년 묘통사(妙通寺) 남쪽에 있는 보리수가 표범의 울음소리와 같은 소리로 울었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적어도 고려 초 이전부터, 아마 불교가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전파되면서 함께 들어와 심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모감주나무, 무환자나무 등 염주를 만들 수 있는 열매를 가진 나무는 한자로는 흔히 보리수라고도 하여 나무 이름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부처님의 입적과 살(sal)나무
장장 45년이란 세월에 걸친 부처님의 사바 세계 포교가 끝나고 80세로 입적하실 때 또 나무와 마지막 인연을 맺게 된다. 팔상도의 쌍림열반상에서 보듯이 사라쌍수(娑羅雙樹) 아래에서 언제나 곁을 떠나지 않았던 아난의 지극한 보살핌을 받으면서 열반에 드셨다. 이때 사방에 쌍수가 있어서 모두 8그루의 사라수가 있었는데 입적을 하시자 4그루의 사라수는 말라 죽어버리고, 나머지 4그루가 쌍을 이루는 사라쌍수만이 무성하게 살아 남았다고 한다.
사라수는 오늘날의 무슨 나무인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인도에서 살sal, 혹은 사라sala라고 부르는 나무로서 우리나라의 참나무처럼 비교적 흔한 나무이다. 대반열반경 ‘공양’에는 부처님께서 구시나가라의 숲에 누우셨을 때, 갑자기 사라쌍수에 꽃이 피어나 부처님께로 떨어졌다는 구절이 있다.
그러나 살나무는 그렇게 아름다운 꽃이 피는 나무는 아니고 크게 자라 재목으로 구실을 하는 나무이다. 무겁고 단단하며 비중도 커서 힘 받는데 쓰기에 적합하며 한때 우리나라에 많이 수입되던 라왕(lauan)이라는 나무와 사촌쯤 된다.
사라수는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오면서 보리수처럼 명확한 대용나무를 찾지 못하고 나라에 따라 지역에 따라 여러 가지 나무를 사라수라고 하였으며 부처님의 탄생과 관련이 있는 아쇼카나무와 상징이 뒤섞이기까지 하였다. 삼국유사의 원효 이야기에 ‘그의 어머니가 밤나무 밑을 지나다 갑자기 태기가 있어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남편이 옷을 나무에 걸어 주어 거기에 누워서 해산하였으므로 이 나무를 사라수라 했다’는 내용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무우수, 보리수, 사라수를 흔히 불교의 3대 성수(聖樹)라하며 여기에 잎을 따서 종이 대신 글자를 새기는 데 쓰였던 다라수(多羅樹)를 넣어 4대 성수라고도 한다.
부처님과 인연을 맺는 나무이야기에 빠트릴 수 없는 또한 가지 이야기가 있다. 어떤 연유에선지 우리나라 절에는 건물 기둥을 비롯해 구시(구유: 나무밥통)와 불상에 이르기까지 굵고 큰 나무로 만든 유물에는 그것을 싸리로 만들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많이 전해온다. 과연 옛 싸리나무는 이렇게 아름드리로 자란 것인가?
싸리나무 기둥과 구시는 없다!
승보 종찰 송광사에 가면, 송광사 삼보(三寶)의 하나인 비사리 구시 2개가 있다. “1724년 전라북도 남원 송동면 세전골에 있던 싸리가 태풍으로 쓰러진 것을 가공해 만든 것으로 조선 영조 이후 국재(國宰)를 모실 때 손님을 위해 밥을 저장했던 통(약 일곱 가마 분량의 밥 저장)”이라는 설명서와 함께이다.
기껏 굵기 2-3cm에 불과한 싸리나무로 구시를 만들었다는 것은 식물학적인 상식으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다. 필자가 현미경으로 싸리나무라 부르는 나무들의 세포 모양을 조사했더니 흔히 괴목(槐木)이라 불리는 느티나무로 만든 것이었다. 다른 곳의 ‘싸리나무‘도 대부분 느티나무이다.
그런데 왜 싸리로 만들었다고 알려지게 되었을까? 어디까지나 추정이겠으나 느티나무의 재질이 사리함을 넣는 통이나 기타 불구(佛具)의 재료로 매우 적합하여 절에서도 흔히 사용한 것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절에서 쓰는 물건 중에서는 사리함이 으뜸이니 사리함을 만든 나무로서 느티나무를 사리(舍利)나무로 부르다가 싸리나무가 되었다고 생각해 본다. 혹시 ‘ㅆ'과 ’ㅅ‘의 발음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경상도 사람들로부터 처음 엇갈리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