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장경 경판전 바닥에는 숯을 묻었는가?
경북대 교수 박상진. 최정
해인사 고려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경판전(經板殿) 건물은 750년 넘게 경판을 고스란히 지켜 왔다는 사실로 많을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건물의 특성은 우선 통기성을 중요시한 건물로 앞면과 뒷면의 창문크기를 달리하여 기류의 흐름을 배려하였고, 대류현상에 의한 상하 공기유동이 원할 하도록 특별한 설계를 하였다. 즉 경판 한 장 마다 양쪽 마구리에 경판두께 보다 훨씬 두꺼운 손잡이를 끼우고, 옆으로 나란히 세워 쌓았으며 천정을 없앴다. 이런 조치들은 모두 나무와 수분과의 관계를 깊이 고려한 과학적인 마인드를 가진 선조들의 혜안이었다.
경판전 바닥의 비밀
그러나 경판전 건물의 백미는 밑바닥에 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불교의 최고 경전인 대장경판을 보관하는 건물이니 당연히 좋은 나무로 마룻바닥을 설치해야 맞다. 그러나 81,258장의 고려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법보전과 수다라장의 경판전은 둘 다 밑바닥에 마루를 깔지 않은 흙바닥 그대로이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흙바닥 속에 특별한 비밀이라도 있는 것처럼 여러 상상을 했다. 맨 흙바닥 위에다 부처님의 경전을 새긴 경판을 보관하였다는 사실이 얼른 이해가 안 가는 것은 당연하였을지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닥에다 숯을 켜켜로 깔아 경판전 내부가 일정한 수분을 유지하도록 조절해 주고 벌레가 살지 못하게 했을 것으로 생각한 듯하다. 누가 처음부터 이런 미확인 사실을 알리기 시작 하였는지, 지금 와서 확인이 불가능하지만 필자를 포함하여 대장경에 관심을 가져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밑바닥 속에 많은 숯이 들어있는 줄로만 알았다.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이야기란 과장되기 마련이다. 경판전 바닥에 숯이 들어있다는 가정은 숯의 신비한 효능을 이야기할 때 단골로 인용되었다. 이런 문제의 사실 확인은 잠깐 바닥을 파보면 금세 알아 볼 수 있는 간단한 일이다. 필자는 경판 조사를 처음 시작하면서부터 굴착허가를 받으려고 여러 번 해인사에 청을 넣었지만 번번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궁금증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자연과학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스님들로서야 신성한 경판전 바닥을 파 보겠다니 쉽게 허락이 날 리가 없다. 10년 넘게 걸쳐 설명을 드린 보람이 있어서 2002년 2월 대장경연구소 관암 스님으로부터 드디어 허가 통보를 받았다. 법보전에서 3곳, 수다라장에서 4곳, 모두 7군데를 선정하여 바닥파기에 들어갔다.
숯은 들어있었는가?
사방 60cm 정방형의 자그마한 터를 잡고 조심스럽게 파 내려갔다. 약간의 흥분과 설렘으로 곡괭이 끝을 응시하면서 마주치는 땅속의 아무것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표토 층에 해당하는 3~5cm 깊이까지는 석회가 혼합된 단단한 층이 있었으며, 수다라장 관람창 왼편 표토 층에는 두께 0.1cm정도의 숯가루 층도 볼 수 있었다. 이는 일제강점기 이후 경판전의 보수 때마다 수시로 시행된 강회(剛灰)다짐을 할 때 들어간 것이다.
다음 5~40cm 깊이까지는 기와 및 작은 돌조각, 때로는 생활도자기 등이 섞여 있어서 다른 곳에서 흙을 가져다 메운 층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40cm 이하 층도 대부분 돌조각이 섞인 층이며 또 다른 메운 층임을 알 수 있었다. 토양분석 결과 모래와 점토가 들어있는 양이 비슷한 사양토(砂壤土)이며 깊이 내려갈수록 자갈이 많아졌다.
수다라장 동편 바닥 ⑦번 위치(그림1참조)는 60cm깊이에서 분청사기 조각을 찾을 수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성종 19년(1488) 경판전에 바람이 치고 비가 새어 거의 다 무너졌으므로 학조대사가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분청사기가 조선 초기에 크게 유행한 것과 연결시켜 보면 흙메움의 시기는 대체로 이때쯤으로 짐작된다.
바닥을 깊이 1m정도 파 보았지만 7곳 어디에도 숯이 대량으로 묻혀있지 않았다. 다만 거의 전체 층에 걸쳐서는 지름0.4~1cm크기의 숯이 띄엄띄엄 찾아질 따름이었다. 이 숯은 소나무 숯으로서 숯가마에서 일부러 구운 것이 아니라, 나무를 불태우고 난 다음에 검정으로 남는 ‘뜬숯’이었다. 뜬숯은 참나무로 굽은 진짜 숯과는 다르다. 또 경판전의 습도를 조절하고 벌레가 살지 못하게 하는 방충목적이라면 상당한 두께로 층층이 넣어져 있어야만 한다. 뜬숯이 부분적으로 들어간 것은 요사스런 귀신을 쫓아내는 벽사(辟邪)의 뜻으로 넣었거나, 흙메움 할 때 부근에 있는 불 피운 터의 흙이 섞여 들어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흙으로만 바닥 마무리
우리는 지금까지 경판전 바닥은 숯을 넣어 습도를 조절하고 경판이 벌레 먹지 않도록 조치한 것으로 알아 왔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 경판전 바닥은 주위의 흙으로 그냥 메운 것임을 명확히 확인하였다. 이는 배수가 잘되는 경사지에 위치한 경판전에는 바닥에 구태여 숯을 넣지 않아도 크게 경판보존에 지장이 없다는 사실을 선조들은 이미 알고 있었음을 증명한다. 바닥 흙과 경판전 공기가 서로 숨 쉴 수 있게 자연 상태 그대로 두어도 경판보관에 지장이 없다. 경판전의 대기가 너무 메말라 있을 때는 바닥 흙에서 올라오는 수분으로 습도를 올려 해주고, 장마 때처럼 너무 습하면 바닥 흙이 수분을 흡수하여 습도를 내려주는 자연 순환 설계를 한 것이다.
표토 층의 강회다짐은 원래부터 해오던 것이 아니라 근세에 들어 경판전을 보수하면서 시행되고 있는 조치이다. 우선은 흙먼지가 일어나지 않은 장점이 있으나 석회의 성질 때문에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석회층은 바닥 흙과 수분교환을 차단하여 경판의 수분조절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이 경판보존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는 앞으로 보다 과학적이고 종합적이 검토가 필요하다. 민족의 위대한 유산을 자손만대에 고스란히 물려주기 위하여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할 일은, 아주 작은 부분까지도 신중하게 검토하고 연구하여야 할 것이다.
경판 바닥을 파고 흙 표본을 채집한 7곳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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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면 상태, 흰색은 강회 다짐한 부분 |
단면에 띄엄띄엄 숯이 들어 있는 모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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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 속에서 나온 기와 및 생활도자기 조각 |
출토된 분청사기 조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