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숲과 나무를 찾아다니는 일에 빠져있다. 전공의 업業이기도 하며 취미생활이기도 하다. 나의 숲 찾기는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놓고 차례로 방문하는 방식이 아니다. 흔히 하는 말로 ‘꽂히면’ 그대로 달려가는 식이다. 멀리 진도에 딸린 관매도란 섬에 자라는 곰솔 숲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후박나무가 보고 싶다. 좋은 만남은 너무 오래 망설일 필요가 없다. 뱃길의 출발점 팽목항으로 내달렸다.
진도의 남동쪽 바다, 진도항의 앞에는 여느 서남해처럼 작은 섬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다. 바람이 화를 돋우지 않는다면 호수처럼 잔잔한 물결이 찰랑이는 평화로운 바다다. 정기 여객선으로 관매도는 여기서 한 시간 반 정도에 도달한다. 진도항의 원래 이름이 팽목항이다. 주위에 팽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팽목항은 수천 개의 노란 깃발로 각인되어 있다. 2014년 4월 16일, 이름 없는 갯마을의 자그마한 ‘팽나무 항구’는 세월호 사건으로 비극의 현장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갓 피어나는 고등학생들이 희생된 것을 생각하면 우리 국민 모두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가슴앓이를 한다.
관매도는 230개 유·무인도로 이루어진 진도의 섬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섬이다. 포구에 닿으니 작은 섬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넓고 시원한 모래사장이 펼쳐진다. 수 천 그루의 솔숲이 고운 모래사장을 반달모양으로 감싸고 있어서 명품 해수욕장이다. 꿈과 낭만이 있는 아름다운 해수욕장이라더니 결코 이름이 부끄럽지 않다. 솔숲은 약 2km에 걸쳐 펼쳐진다. 넓이는 10만 평방미터, 약 3만평에 이른다. 솔숲의 나무는 육지에서 우리가 흔히 보는 껍질이 붉은 소나무가 아니라 곰솔이다. 껍질이 검다하여 한자이름이 흑송黑松인데 우리말이 되면서 검솔을 거쳐 곰솔이 되었다. 바닷가의 강열한 햇빛에 바래고 바닷바람에 부대끼면서 자란 탓에 일반 소나무보다 훨씬 억세다. 작은 섬과 규모로 봐서 어울림이 맞지 않은 곰솔 숲이 왜 넓은 터를 잡고 있는가?. 지나가는 아주머니를 붙잡고 물어봤다.
‘글시유!, 옛날부터 있는 디요.’
이럴 때 마을 이장님을 찾아가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 지형 조건으로 짐작이 가지만, 뒤쪽의 넓은 들을 보호해줄 숲으로서 예부터 심어져 있었다한다. 400여 년 전, 전남 나주에서 살던 함재춘이라는 사람이 처음 섬에 들어와 한 그루씩 심은 게 시초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쨌든 잔모래가 바람에 날려 밭농사를 망치지 않도록 하는 조치이다. 조금 어려운 말로 모래를 막아주는 방사림防砂林이다. 늦봄에 찾아가면 샛노란 유채 밭이 제주도 못지않다. 숲속의 산책길과 야영장도 잘 정비되어 있다.
마을로 들어서면 이어지는 나지막한 돌담이 너무나 정겹다. 해수욕 철의 성수기가 아니면 언제나 마을은 조용하다. 그 나마 세월호 사건이후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들어 지금은 더 조용하단다. 마을 곁의 들 자락에 두 아름이 넘는 후박나무 2그루와 곰솔 2그루의 고목이 모여 작은 숲을 이룬다. 고목으로서의 품위와 기품을 잃지 않았지만 먼 길을 찾아간 나그네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따뜻함이 서려있다. 후박나무 두 그루만 천연기념물 212호로 지정되었다. 옆에 두고 왜 이렇게 차별대접을 했는지 항의라도 해봄직하다. 그래도 다 같이 하나의 숲으로 보호되고 있으니 불평은 없는 것 같다.
후박나무 두 그루는 다 같이 키 16m, 나이 300년으로 같다. 굵기도 둘 모두 두 아름 반이 조금 넘어 마치 쌍둥이 같다. 곰솔은 높이 20m, 나이는 100년 남짓이며 굵기는 굵은 것이 후박나무와 거의 같고 한쪽 곰솔은 약간 작다. 이곳은 옛날부터 바다와 함께 사는 사람들이 안녕을 비는 서낭 숲의 역할을 했다. 원래 서낭당도 있었고 숲도 여러 그루의 나무가 자랐다. 옆에 초등학교가 들어서고 서낭신에게 안녕을 빌던 사람들도 줄어들면서 이렇게 달랑 4그루의 나무만 남았다. 후박나무는 인정이 두텁고 거짓이 없다는 뜻의 ‘후박厚朴하다’에서 온 이름이다. 후박나무는 이름처럼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매끄러운 줄기 껍질과 도톰하면서도 편안한 모양의 잎사귀는 넉넉하고 후덕한 느낌을 준다.
3백년을 바랜 세월은 전설이란 이야기를 잉태했다. 옛날 서낭당에는 매년 정월 초에 가장 착실하고 모범적인 미혼청년을 제주祭主로 추대하여 당제를 올렸다고 한다. 추대된 제주는 당제를 올리기 전이나 올린 후에도 1년 동안은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했다. 특히 남녀가 만나는 것은 금기로 되어있었다. 어느 해 제주로 선정되어 당제를 지낸 청년은 전부터 몰래 사귀어오던 예쁜 처녀가 있었다 한다. 만나지 않으려 하였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두 사람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몰래 미팅'을 하게 되었다. 그때 갑자기 맑은 날임에도 천둥번개가 치더니 폭우가 쏟아지면서 바위에 벼락이 떨어져 청년과 처녀가 돌벼락에 맞아 두 사람은 관매도 명소의 하나인 구렁이 바위가 되어 버렸다. 수 십 미터 되는 두 마리의 구렁이가 마치 휘어 감고 있는 듯 하여 여자들이 이곳을 보면 애기를 가질 수 없다고 한다. 그 후부터는 당제 제주를 아예 미혼 청년이 아니라 덕망 있는 마을 어른으로 추대하였다고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청춘 남녀의 사랑은 떼어 놓기가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다.
관매도는 곰솔 숲 거닐기와 후박나무 고목과의 만남에 이어서 잠시 둘러볼 곳이 많다. 관매 8경이다. 곰솔 숲이 첫째이고 방아섬, 꽁돌 돌무덤, 할미중드랭이 굴, 구렁이 바위 등 아기자기한 섬 풍광에 빠져 들게 된다.
찾아 가려면...
곰솔 숲 : 전남 진도군 조도면 관매도리 산 106-2 외
후박나무 천연기념물 : 전남 진도군 조도면 관매도리 456
가는 길 : 팽목항-조도-관매도 카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