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막 꺾이기 시작한 8월 중순, 경북 울진 소광리 금강소나무 숲을 찾았다. 36번 국도에서 소광리 계곡 길로 접어들자 개울물 소리부터 우렁차다. 어제까지 내리던 비가 아침에 그친 탓이다. 시멘트포장길과 비포장길이 교차하는 1차선 좁은 도로 탓에 자동차는 덜컹거려도 마음은 전혀 불편하지 않다. 계곡의 좌우로 이어지는 초록바다가 도시생활에 지친 몸과 마음을 한꺼번에 씻어주고도 남는다. 출입 통제선을 지나 숲에 들어서자 첫 만나는 돌비석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소나무의 政府가 어디 있을까?/소나무의 궁궐이 어디 있을까?/묻지 말고, 경상북도 울진군 서면 소광리로 가자/아침에 한 나무가 일어서서 하늘을 떠받치면/또 한 나무가 일어서고 그러면/또 한 나무가 따라 일어서서/하늘지붕의 기둥이 되는/금강송의 나라,....’
시인 안도현이 읊조린 금강소나무 노래를 비에 새겨 두었다. 사람의 정부는 서울에 있지만 시인의 말처럼 소나무의 정부가 있는 본고장은 여기다. 대한민국 최고의 소나무 숲은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에 펼쳐진다. ‘서면’이란 면 이름까지 최근에 금강송면으로 바꿀 만큼 금강소나무가 유명한 곳이다. 지도를 펴놓고 보면 국토의 동쪽, 굽이굽이 계곡과 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오다 가운데쯤에 울진군이 있다. 지금도 서울에서나 부산에서나 광주에서나 우리나라 웬만한 대도시에서 달려가도 3시간이 더 걸리는 오지중의 오지다. 소광리는 울진읍에서도 1시간을 더 들어가야 한다.
옛사람들은 소나무로 지어진 집의 안방에서 아이가 태어났고, 소나무 장작으로 데워진 온돌에서 산모는 몸조리를 했다. 새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금줄에는 솔가지가 끼워진다. 아이가 자라면서 뒷동산의 솔숲은 놀이터가 되고 땔감을 해오는 일터가 되기도 한다. 명절이면 송홧가루로 만든 다식(茶食)을 먹고 양반집이라면 십장생도가 그려진 병풍을 치고 꿈나라로 들어간다. 가구를 비롯한 여러 생활필수품에도 소나무는 빠지지 않았다. 선비로 행세를 하려면 송연묵(松煙墨)으로 간 먹물을 붓에 묻혀 일필휘지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한 세상살이가 끝나면 소나무로 만든 관속에 들어가 땅속에 묻힌다. 그러고도 소나무와 인연은 끝나지 않는다. 도래솔로 주위를 둘러치고는 다시 영겁의 시간을 소나무와 함께 한다.
이렇게 예부터 우리와 가장 가까이에 소나무다. 이 중 특히 쓰임이 많은 특별한 품종이 금강소나무다. 특징은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구부러지고 비틀린 모습의 소나무가 아니라 하늘을 향하여 수직으로 곧고 우람하게 뻗어 당당하다. 이곳 금강소나무 숲 면적은 40,151ha, 여의도 면적의 140배나 된다.
죽죽 뻗어 아름다운 금강소나무 숲을 만든 나무들은 대체로 평균 나이 120여 년이다. 사람으로 치면 청장년들이라 의젓하고 원숙해 보이며 건강미까지 겸하고 있다. 어린 나무도 많지만 대체 눈에 띄는 나무들은 적어도 백년 세월을 훌쩍 넘겨 살아온 나무들이다. 이 숲의 가장 어른은 조령 고갯마루에 자라는 6백년 소나무다. 그래서 이름은 대왕송이다. 조선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와 거의 동갑네기다. 이 일대 금강소나무 모두를 백성으로 두고 오늘도 변함없이 당당한 위세를 자랑하고 있다. 둘레 3.7m로서 두 아름이 훌쩍 넘고 높이는 14m이다. 두 번째 어른은 숲의 시작점에서 조금 올라간 개울가에 자라는 5백년 보호수다. 조선왕조 9대 임금 성종 때 쯤 태어난 것으로 짐작되며 둘레 3m, 높이 25m에 이른다. 그 외에도 3백년 미인송, 조금 비틀어져 자란다고 억울하게도 ‘못난이 소나무’가 되어 버린 나무까지 하나하나 훑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숲은 울진 십이령이라는 고개를 넘어 다니는 옛길이 지나가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의 36번 국도가 생기기 이전 울진의 미역 소금 어물을 봉화의 춘양장에 가져다 팔고 내륙의 생필품을 가져오는 통로였다. 이는 봇짐장수와 등짐장수의 합성어인 보부상(褓負商)들이 담당하였다. 1890년 보부상 단체들의 우두머리인 접장과 반수를 지낸 정한조와 권재만의 공을 기리기 위해 ‘울진 내성행상불망비(乃城行商不忘碑)’세워 기념하고 있다. 한양 가는 선비들도, 부임하는 원님도 이 길로 밖에 움직일 수 없었다. 숲 안 약간의 평지가 있는 곳은 대부분 화전 터이다. 어렵던 시절 산에 불을 질러 나무를 태우고 그 자리에 곡물을 심는 밭을 화전(火田)이라 했다. 1968년 울진삼척에 무장공비가 침투하여 분탕질 치자 화전민을 이주시키면서 없어져 버렸다.
조선시대에는 금강소나무 숲을 특별히 보호하였다. 집짓고 배 만들고 여러 생활용구 만들기에 빠지지 않았지만 또 하나의 큰 쓰임이 임금님의 관재 만들기였다. 나무가 천천히 자라 나이테가 촘촘하고 나무속에 여러 생리 화합물질이 충만하여 잘 썩지 않아야 관재로 제격이다. 이런 조건을 갖춘 금강소나무의 속은 대체로 황갈색이므로 흔히 황장목(黃腸木)이라 했다. 톱으로 현장에서 켠 다음에 우마차로 배에다 실을 수 있는 한강수계까지 옮겨간 것으로 짐작된다. 나라님이 쓸 나무이니 황장목 숲은 철저히 관리하고 출입 통제는 당연한 일이다. 숲으로 들어가는 자동차 길의 길목에, 이곳이 황장목을 키우는 산이므로 함부로 출입을 하지 마라는 황장봉계(黃腸封界) 표석이 지금도 남아 있다.
깊은 산속에 숨어있던 이 숲에 우리가 가까이 갈 수 있게 된 것은 2011년에 40여km에 달하는 숲길이 만들어 지면서 부터다. 지금은 6개의 성격이 다른 탐방 길이 조성되어 있으며 길마다 길이가 12~18km에 이른다. 오염되지 않은 순수 자연 그대로를 느끼고 마음껏 숨 쉴 수 있다. 황사, 미세먼지, 심지어 오존까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운 좋으면 일대에 서식하는 천연기념물 산양을 만나는 행운도 가져다준다고 한다. 걷는데 7~8시간이 소요되며 예약을 받아 숲 해설사를 따라 다녀야만 한다. 좀 번거로워도 우리 자손들에게도 이 숲을 고스란히 물려주기 위하여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더 늦기 전에 대한민국 최고의 숲, 이곳 금강소나무 숲길을 한번 걸어 보시길 권한다.
찾아가려면…
답사 특징 : 사전 예약과 가이드 동반
출발 위치 :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657 금강송펜션 외
예약 문의 : 금강소나무 숲길 안내센터(054-781-7118, 054-782-6118)
예약 홈페이지 : http://uljintrail.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