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과 경남사이를 지나 남해안 가운데로 흘러드는 강이 섬진강이다. 강의 입구에 섬진(蟾津)마을이 있는데, 고려 우왕 때 왜구가 쳐들어오자 두꺼비 수천마리가 울어서 내쫒았다 하여 섬진강이다. 여기서 쌍계사 입구 화개장터까지 바다 못지않은 넓은 뱃길이 펼쳐지고 그 길목 중간쯤에 하동이 자리 잡았다.
‘쌍 돛대 님을 싣고 포구로 돌고/ 섬진강 맑은 물에 물새가 운다/ 쌍계사 쇠북 소리 은은히 울 때/ 노을진 물길 위엔 꽃잎이 진다/ 80리 포구야, 하동포구야/ 내 님 데려다 주오’
가수 하춘화씨가 70년대 초에 부른 ‘하동포구 아가씨’다. 7~80년 전, 남해 노량에서 출발한 장삿배는 섬진강을 따라 올라왔다. 장사치들은 풍부한 물산이 모여드는 하동 장에서 한몫을 잡고 다음날이면 ‘있어야 할 것은 다 있는 화개장터’에서 80리 하동포구 장삿길을 마감하였다. 당시로서야 고달픈 생활전선의 길고 긴 뱃길이었지만, 오늘의 눈으로 보면 낭만과 꿈이 가득한 물길이었다. 지금도 벚꽃 길 따라 수없이 자리 잡은 음식점을 찾아 재첩국 한 그릇을 마시면 옛 낭만이 고스란히 살아난다.
하동읍을 감싸고도는 섬진강가의 넓은 백사장을 따라 띠처럼 이어지는 솔숲은 ‘하동 송림(松林)’ 공식 명칭이다. 오늘날 국내 최대의 이 토종 소나무 숲은 2005년 천연기념물 445호로 지정하여 보호하는 중요 문화재다. 숲은 조선 영조 21년(1745) 당시 하동 도호부사 전천상(田天祥)이라는 분이 처음 조성하였다. 민초들의 아픔을 알아주는 대표적인 목민관이었다. 처음 부임한 그의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섬진강의 모래톱과 푸른 강물이었다. 이곳을 다스려야 하동읍이 편안해 지리라는 것은 알아차리는데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흙과 돌로 만드는 제방은 예나 지금이나 막대한 경비가 들어간다. 꼭 제방만으로 물길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즈음 식으로 말하자면 자연친화적인 제방을 만들자고 외친 셈이니 안목도 대단한 목민관이었다. 봄날이 오자 부민(府民)을 대대적으로 동원하여 3천여 그루의 소나무를 심었다. 현재 남아있는 숲은 길이 430m, 폭 110m, 면적 50,331m2이며 크고 작은 소나무 9백여 그루가 자란다. 지름 거의 한 아름에 이르는 나무들이 많고 좀 굵은 고목은 나이 100~200년에 이른다. 270여년 전에 심은 ‘전천상 소나무’들도 섞여 있으니 역사와 전통이 있는 숲임에 틀림없다. 그는 멀리 광양만부터 불어 닥치는 바닷바람에 모래가 날리는 것을 막고, 홍수로 넘어오는 물의 속도와 양을 줄여주는 다목적 숲으로 하동송림을 만들었다. 자라는 개개의 소나무는 어린나무, 청소년나무, 청년나무, 장년나무, 노인나무가 함께 어우러져 있어서 ‘생태적인 안정성’이 뛰어나다. 또 세월의 풍상을 말해주듯 구부러지고 비틀어지고, 때로는 서로 기대기까지 한 나무의 모습은 자연스럽고 안정감이 있다. 최근에는 입구에서 마치 환영인사로 절을 하는 것처럼 허리를 구부린 ‘맞이나무’, 줄기 둘이 가까이 마주보고 있어서 ‘원앙나무’, 검붉은 껍질이 곱다하여 ‘고운매나무’, 가지가 분질러져 생김이 별로인 ‘못난이나무’까지 여러 별명을 붙여 관람객들의 흥미를 끌고 있다. 넓은 백사장을 앞에 두고 숲 터도 옛 백사장 자리다. 그래서 다른 이름은 백사청송(白沙靑松)이며 짙은 솔숲이 거의 검푸르게 보인다하여 창송(蒼松)이라고도 한다. 말이 그대로 어울리는 아름다운 솔숲이다. 자연히 솔숲은 사람들이 모이는 단합대회 장소로 제격이다. 정월대보름날이면 백사장에 한 해의 소망을 담은 달집을 태우며, 바로 강 건너 이웃 전라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화합의 장을 삼기도 했다. 봄날이면 아낙들은 진달래 꽃잎으로 꽃전을 붙여먹으면서 한해의 농사를 시작하는 행사를 했다. 주변의 빼어난 풍광을 두고 선비들은 시 한수를 읊조리기에 인색하지 않았고 활쏘기 장소로도 애용되었다.
이렇게 270년 전의 선견지명을 가진 한 지방 관리의 백성사랑 덕분에 오늘의 우리 앞에 하동송림이 서 있다. 전천상 부사는 이곳 송림을 조성한 것 외에도 남달랐던 나무사랑의 흔적이 또 보인다. 하동송림에서 십여km 더 올라가면 상평마을,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재현해 놓은 최참판댁의 입구에 둘레 2.5m, 높이 25m, 나이 5백년 쯤 된 커다란 팽나무가 한 그루 있다. 이 나무에 그는 위민정(慰民亭)이라 이름을 지어주고 백성들이 모여 쉬는 곳으로 지정해 주었다한다.
하동군에서 따로 붙인 숲 이름은 ‘하동송림공원’이다. 공원이니 읍민의 쉼터로 애용한다. 여름의 피서 철이면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당연히 보존에 문제가 생긴다. 숲 안에는 급수장, 파출소까지 들어서 있으니 여름 한번 지나면 숲이 몸살을 앓기 마련이다. 숲을 반으로 갈라 교대로 휴식년제를 도입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제 천연기념물이라는 최고의 타이틀을 얻었으니 출입통제를 비롯한 좀 더 획기적인 보존 대책이 있기를 기대한다.
찾아가려면...
자가용 : 남해고속도로 하동IC에서 약 12km
버스 :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약 1시간 반 간격, 4시간 소요, 요금 2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