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이 좋아하는 나무, 싫어하는 나무
옛 귀신들은 커다란 고목나무와 함께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마을을 지켜주는 당산나무에 얽힌 한여름 밤의 오싹한 귀신 이야기가 때로는 더위를 식혀주는 청량제가 되기도 한다. 굵기가 몇 아름이나 되고 수백 년을 살아가므로 고목이 된 당산나무 속은 곧잘 썩고 줄기에 흔히 큰 구멍이 뚫린다. 밝은 곳보다 어둡고 습한 곳을 좋아하는 귀신이 살기에는 이상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또 이런 곳은 벌레나 곤충은 물론 작은 동물이 자칫 최후를 맞이하는 곳이어서 그들의 사체에서 나온 인(燐) 때문에 비 오는 날 밤에는 도깨비불이 번쩍이기도 한다. 당산나무를 무대로 하는 귀신이나 도깨비는 마을을 지키고 사람들을 돌봐주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마을의 길목에 서서 다른 잡귀신들을 쫓아내고, 사람들에게는 올바른 행동을 하지 않을 때 가만두지 않을 것 같은 위엄으로 마을의 기강을 바로 잡는다. 자연스레 당산나무 귀신들은 사람들의 정신적인 지주로서 수많은 전설을 간직하고 있으며, 아쉬울 때는 찾아와서 소원을 빌어보는 성황당의 주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못된 짓을 하는 잡귀신들은 당산나무에 사는 ‘지킴이’ 귀신들의 눈을 용케 피하여 마을로 몰래 숨어 들어간다. 이들은 마을을 마음대로 돌아다니면서 만만해 보이는 집만 골라내어 사람들을 병들게 하고 고통을 주며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한다. 옛사람들은 부적을 붙이고 굿을 하는 등 이들을 쫓아낼 궁리에 골몰했다. 여러 수단을 동원했겠지만 나무를 이용한 귀신 퇴치 방법도 흥미롭다. 우리 선조들은 못된 귀신일수록 사람들의 눈을 속이기 위하여 갓과 도포로 치장한 양반들의 정장을 입고 다닌다고 생각한 듯하다. 그래서 고슴도치처럼 촘촘한 가시가 특징인 음나무 가지를 골라 대문 위나 안방의 문설주 위에다 가로로 걸어놓았다. 험상궂은 가시에 망토 같은 도포 자락이 금세 걸릴 것이니 아예 들어오기를 포기하라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다. 그러나 들녘의 참새가 허수아비를 아랑곳하지 않듯이 약삭빠른 귀신들은 음나무 가시 정도로는 겁먹지 않는다. 대문과 안방 문을 무사통과하여 몸속으로 들어와 버린 귀신은 무당을 불러 복숭아나무 가지로 쫓아낸다. 여기에는 이런 사연이 있다. 옛날 중국의 ‘예’란 활쏘기 명수는 하늘에 떠 있는 태양마저도 화살 하나로 떨어트릴 수 있는 실력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배신한 제자가 휘두르는 복숭아나무 몽둥이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예는 죽어 귀신이 되어서도 복숭아나무를 싫어하였고 다른 귀신들도 덩달아 이 나무를 무서워하였으므로 사람들은 귀신을 쫓는 데 썼다는 것이다.
효자인 세종은 어머니 원경왕후가 위독해지자 직접 복숭아 가지를 잡고 지성으로 종일토록 기도하였으나 병은 오히려 악화 됐다고 한다. 이처럼 한번 안방을 거쳐 몸속까지 들어와 버린 귀신은 녹녹하게 쫓겨나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부터 귀신이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 자체를 원천봉쇄하는 유비무환의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귀신이 무서워하는 복숭아나무를 심어두어 아예 근처에도 못 오게 하는 방법을 썼다. 그러나 집안에는 심을 수 없었는데, 좋은 귀신 나쁜 귀신 가리지 않고 모두 쫓아내어 제삿밥을 잡수러 오시는 할아버지의 혼령까지 되돌아가시게 해버리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나쁜 잡귀신만 가려서 쫓아내는 무환자나무가 제격이다. 옛날 중국에 앞날을 기막히게 잘 알아맞히는 이름난 무당이 있었는데, 그는 병자에 붙어 있는 귀신을 이 나무의 가지로 때려서 쫓아내버리고 병을 고쳤다한다.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무환자나무를 잘라 여러 가지 생활 도구를 만들어 쓰면서 환자가 생기지 않고 걱정이 없다는 뜻으로 ‘무환자(無患子)’ 나무라는 이름을 붙여서 심었다는 것이다. 가을이 짙어갈 때 이 나무는 황갈색의 굵은 구슬만한 열매가 달리고 속에는 돌덩이 같이 단단한 새까만 종자가 한 개씩 들어 있다. 불교의 경전인《목환자경》에는 무환자나무 열매 백여덟 개를 꿰어서 지극한 마음으로 하나씩 헤아려 나가면 마음속 깊숙이 들어 있는 번뇌와 고통이 영원히 없어진다고 했다. 한마디로 스님들의 염불의 재료로 부처님이 추천하는 나무이니 잡귀들이 감히 붙을 엄두도 못 낼 것이다. 우리나라 남부 지방을 비롯하여 열대 지방에 걸쳐 널리 자라는 무환자나무 종류의 속명(屬名) ‘sapindus’는 ‘인도의 비누’라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말이다. 열매껍질과 줄기나 가지의 속껍질에는 일종의 계면활성제가 들어 있어서 인도 사람들이 빨래할 때나 머리를 감을 때 사용해서 생긴 이름이다. 목욕재계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할 때 필요한 나무이니 이런 쓰임새 역시 잡귀신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모양이다. 막강한 힘을 자랑하던 귀신들이었지만 가느다란 나뭇가지 하나로 그냥 쫓겨나는 그들의 처지가 어찌 보면 낭만적이기도 하다.
첨단과학 시대에 살고 있는 오늘의 우리들은 병들어 죽음에 이르는 사람들의 모든 아픔은 귀신 붙은 것으로 해석하고, 사람의 운명까지 귀신이 쥐고 있다고 생각하던 순진한 그날을 오히려 그리워하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