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섬, 관매도 당산 숲의 후박나무
세밑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겨울날이다. 며칠째 머릿속에는 온통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했다. 늘씬한 팔등신 미인도 아니고 추억의 첫사랑 애인은 물론 아니다. 전공의 틀 속에 갇혀 사는 나 같은 사람에게 나무를 벗어날 수가 없다. 찾아 갈 곳은 관매도라는 남쪽 섬나라에 자라는 후박나무 고목 한 그루다. 몇 년째 쫓아다니는 고목나무 만나기에 찾아가기가 가장 먼 곳이다. 새벽 6시, 만 10년째 나의 애마가 된 고물 승용차 하나를 믿고 전라남도 진도읍에서도 한참 더 내려가야 하는 팽목 항으로 달렸다. 내가 사는 대구에서 거의 400킬로미터, 딱 천리길이다. 휴게소에서 점심 한끼 후딱 해치우고 계속 달렸다. 팽목항에서 서남해의 끝자락 조도와 관매도로 가는 배가 떠난다. 2시 반 출발하는 카페리는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승객은 고작 10여명이다. 그나마 조도에 대부분 내려버리고 먹음직한 과일바구니를 들고 가는 30대 중반의 멋쟁이 청년과 우리 부부를 합쳐 세 사람이 전부다. 포구에 닿으니 작은 섬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넓고 시원한 해수욕장이 펼쳐진다. 수 천 그루의 곰솔이 모래사장을 반달모양으로 감싸고 있다. 꿈과 낭만이 있는 아름다운 해수욕장이라더니 이름 그대로다. 성수기가 아니라 사람을 만나기 어려울 만큼 조용하다.
마을과 초등학교가 이어지는 작은 들판 자락에 작은 숲을 이루어 자라는 고목나무 몇 그루가 먼 길을 찾아간 나그네를 반갑게 맞아준다. 아름드리 후박나무 2그루가 서로 몸을 비비듯이 가까이 붙어 자란다. 가지가 분질러져 나간 키다리 곰솔과 완전히 들어 누워버린 참느릅나무 한 그루가 모여서 다정한 가족을 이룬다. 후박나무는 우리나라 육지로는 남해안에서 제주도까지 섬지방 어디에서나 흔히 만나는 나무다. 온대지방에 자라는 분들이 참나무와 친숙한 것과 비교될 정도다. 나무껍질을 벗겨 약으로 쓰면서 후박(厚朴)이란 이름이 붙었고, 형용사로 쓰이면 인정이 두텁고 거짓이 없다는 뜻이 된다. 두툼하면서도 매끈한 껍질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후박한 시골인심이 그대로 떠오른다. 주변에 흔하고 친근한 후박나무는 섬사람들로부터 마을의 서낭나무로 숭앙받을 수 있어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매년 정월 초가 되면 바다 신에게 고기 많이 잡고 제발 사고 없이 한해를 보내게 해달라는 온갖 정성으로 제사를 올리던 곳이다. 잠시 나무 등걸에 걸터앉아 옛 섬사람들이 바다와 벌렸을 처절한 삶을 되돌아보는 사이 어느 듯 겨울 해는 지평선으로 넘어가고 있다. 천리 길을 달려간 오늘의 짧은 만남을 마감할 수밖에 없다.
섬에 하나 밖에 없는 가게 겸 민박집에서 하루를 묵기로 했다. 금방 만난 후박나무와 이미지가 그대로 맞아 떨어지는 주인아줌마가 나그네를 편안하게 맞아준다. 섬은 일단 들어가면 나올 때 혹시 배가 오지 않을까 언제나 신경이 쓰인다. 파랑주의보라도 내리면 배는 꼼짝 않기 때문이다. 민박집의 허름한 방에 달린 창문의 달그락 소리에도 배가 출항할 것인지를 걱정하면서 아침을 맞았다. 전날의 흐린 날씨와는 달리 구름 한점 없는 맑은 날이다. 어제 작별인사를 나눈 후박나무한테 다시 달려갔다. 바다를 뚫고 솟아오르는 아침 햇살이 짙푸른 잎사귀에 얹혀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모습을 놓칠 수 없어서다. 서낭신의 허락도 없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을 몇 장 더 찍었다. 10시 출항이라는 시간에 맞추어 서둘러 선창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여객선으로 보이는 배는 그림자도 없다. 아이쿠!. 섬에 하루 더 갇히는 구나! 하고 낙담할 즈음 여객선이 아니라 조그마한 어선 한 척이 오더니 어서 타라고 한다. 높은 파도에다 이처럼 작은 배를 처음 타보는 산골사람의 불안한 마음은 아랑곳없이 모터소리도 요란한 배는 30분 만에 조도의 작은 어항에 내려 준다. 다시 버스에 10분쯤 얹혀가니 조도 본 항구다. 들어갈 때와는 달리 여기서 팽목 가는 배를 바꿔 타야 한단다. 어제 본 그 멋쟁이 청년을 또 만나 몇 마디 인사말을 건넸다. 인심 좋은 그는 섬 주민에게 만 적용되는 50%할인 혜택을 받도록 조치하여 주었다. 엉겁결에 그런다고 하고 표를 끊으니 우리 부부 둘을 합쳐 이익이 4천 원이다. 배에서는 누가 주민등록증을 보여 달랄 까봐 조마조마하다. 이런 일도 신경 줄이 굵고 심장이 튼튼해야 하나 보다. 집에 올 때까지 계속 꺼림칙한 기분을 떨칠 수 없다. 다음 날 일부러 시내를 나갔다. 구세군 냄비가 생각나서다. 우리부부 양심을 판 돈 4천원의 다섯 배인 만원짜리 2장을 빨간 통 안에 넣고서야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