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언제나 국토방위의 요충지다. 외적을 막는 기본적인 수단으로 반드시 성을 쌓아야하고 여기에 탱자나무 심기는 꼭 필요한 공정이었다. 예부터 높은 성벽을 만들고 그 바깥에다는 탱자나무를 촘촘히 심어 가시 울타리를 만들고,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해자(垓子)라 하여 깊은 도랑을 파고 물을 채웠다. 탱자나무는 손가락 길이만한 험상궂은 가시가 사방으로 빈틈없이 내밀고 있어서 특별한 장비를 갖추지 않으면 통과하여 성벽을 기어오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성을 탱자성이란 뜻으로 지성(枳城)이라 하였으며 사적 11호인 해미읍성이 대표적이다. 이곳 탱자나무는 천연기념물 79호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 탱자나무와 함께 옛 강화 성터의 유물이다. 강화성은 앞이 바로 바다이니 해자는 필요 없었을 것이므로 성벽과 바로 이어서 수많은 탱자나무를 심었다. 그 중 하나가 살아남아 오늘의 갑곶 탱자나무가 된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선조에서 광해군과 인조로 이어지면서 때늦게 강화도 방위에 관심을 갖는다. 목책(木柵)을 설치하고 성을 다시 쌓았다는 여러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아지는 것으로 보아 이 탱자나무도 아마 이때쯤의 어느 시기에 심은 것이 아닌가 추정해 볼 수 있다. 따라서 나이는 적어도 4백년을 넘나든다. 나무는 자그마한 키에 뿌리목의 둘레가 거의 1미터나 되고 여기저기 썩은 부분을 도려내고 메워 넣은 흔적이 지나온 세월을 말하고 있다. 이제 나이를 먹어 육신은 노쇠하였지만 나무 특징은 그대로 살아있다. 아직도 날카로운 가시를 수없이 내밀어 여전히 위협적이다. 높이는 약 4.2m정도, 뿌리목 둘레는 1m이다. 가지뻗음은 동서가 7.9m, 남북이 8.3m정도이다. 이 탱자나무가 천연기념물의 영예를 앉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조상들이 외적의 침입에 철저하게 대비한 실증적 증거로서 역사성을 가진 유물임이 첫 번째 이유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이곳이 탱자나무가 살아남을 수 있는 북쪽 한계선이기 때문이다. 원래 탱자나무는 귤나무와 같이 따뜻한 남쪽지방에 자라는 대표적인 나무인데, 강화도에서도 이렇게 수 백 년을 거뜬히 버틴다는 것은 식물학적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