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대는 고려 때부터 도호부(都護府)청사가 있던 곳으로 조선왕조에 들어서서는 태종 13년(1413) ‘부평도호부’를 설치하였다고 한다. 부평초등학교를 지어면서 건물은 모두 철거되고 현재는 내아(內衙) 하나만 남아 있다. 바로 앞에는 조선 정조대왕이 손을 씻었다는 욕은지(慾恩池)와 활을 쏘았다는 어사대(御射臺)가 있다. 내아, 욕은지, 어사대는 높은 철망이 처져 통제를 받고 있으며 은행나무는 정문 오른 편 운동장 한 구석에 자란다. 이 나무는 본래 부평도호부 관청건물의 주변 환경을 아름답게 하기 위한 풍치목으로 심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나무는 시기념물 나무로서는 굵기나 높이에서 웅장한 맛이 전혀 없다. 높이 12.5m, 가슴높이 둘레 403cm 가지 펼침 동서방향 14m, 남북 12.4m에 불과하다. 나이는 부평도호부를 설치할 때 심은 바로 그 나무로 본다면 약 600년이 되는 셈이다. 이 나무에서 50m쯤 떨어져서 학교 건물 바로 앞에는 높이 17m, 가슴높이 둘레 500cm의 보호수 은행나무가 한 그루 더 있다. 지정된 나무보다 오히려 더 크고 굵다. 내아 건물 옆에는 두 아름쯤 되는 능수버들 한 그루가 자라면서 은행나무와 수관이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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