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판과 구전口傳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은 몽고군의 침략을 받아 처절한 전쟁을 벌이고 있는 기간인 고려 고종 23년(1236)~38년(1251)의 16년간에 걸쳐 제작되었다. 경판은 81,352장에 이르는 목판이며 760여년을 훌쩍 넘긴 오늘날까지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길이 68 혹은 78㎝짜리가 대부분이며 폭 약 24㎝, 두께 약 3cm, 무게 3.5㎏정도이다. 경판 한 장 마다 앞뒤로 640여자의 불교경전이 새겨져 있으므로 전체로는 총 글자 수가 약 5천2백만자에 이른다. 이는 조선왕조의 오백년의 역사를 기록한 조선왕실록의 글자 수와 맞먹는다. 그러나 전쟁 중에 이렇게 엄청난 경판 제작 사업을 벌이면서도 오늘날 우리가 궁금해 하는 상세한 제작과정을 밝힌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다만 몇몇 구전이 전해질 뿐이다. 구전을 그대로 믿기는 어렵고 언제나 검정이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경판을 만든 재료가 자작나무라고 전해져 왔으나 필자의 현미경 조사에 따르면 산벚나무와 돌배나무임이 밝혀졌다. 그 외 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판전板殿 바닥에 숯이 묻혀있다거나 나무를 바닷물에 3년을 담가두었다는 등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과연 진실은 무엇인지 찾아 들어가 보고자 한다.
판전 바닥에 숯이 묻혔는가?
판전 건물의 밑바닥에 사람들은 관심이 많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불교의 최고 경전인 대장경판을 보관하는 건물이니 당연히 좋은 나무로 튼튼한 마룻바닥을 설치해야 맞다. 그러나 판전의 바닥은 마루를 깔지 않은 흙바닥 그대로이다. 맨 흙바닥에 부처님의 경전을 새긴 경판을 보관했다는 사실이 얼른 이해가 안 가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판전 밑바닥에 숯이 묻혀있다는 구전이 오래전부터 생겨난 것인지 모른다. 이런 문제의 사실 확인은 어렵지 않다. 바닥을 파보면 금세 알아볼 수 있는 간단한 일이다. 그러나 신성한 경전이 보관된 판전 바닥을 무엄하게도 괭이로 파헤쳐보는 일이니 쉽게 허락이 날 리가 없다. 필자는 오랫동안 해인사 스님들을 괴롭힌 보람이 있어서 10여년 전 드디어 허가 통보를 받았다. 법보전 3곳, 수다라장 4곳 등 모두 7군데를 표본 장소로 선정하여 사방 1m 정방형의 자그마한 터를 잡고 조심스럽게 파내려갔다. 표토층에 해당하는 3~5cm 깊이에 부분적으로 두께 0.1cm 정도의 숯가루 층을 볼 수 있는 것이 전부다. 이는 일제강점기 이후 판전의 보수 때마다 수시로 시행된 강회剛灰 다짐 때 들어간 것일 뿐이다.
다음 5~40cm 깊이까지는 기와 및 작은 돌조각, 때로는 생활 도자기 등이 섞여 있어서 다른 곳에서 흙을 가져다 메운 층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40cm 이하 층도 대부분 돌조각이 섞인 층으로 또 다른 메운 층임을 알 수 있었다. 바닥을 깊이 1m 정도 파보았지만 7곳 어디에도 숯이 묻혀 있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까지 판전 바닥에 숯을 넣어 습도를 조절하고 경판이 벌레 먹지 않도록 조치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판전 바닥은 주위의 흙으로 그냥 메운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확인한 셈이다. 이는 배수가 잘 되는 경사지에 위치한 판전 바닥에 구태여 숯을 넣지 않아도, 판전 안 공기가 가지고 있는 수분의 남고 모자람을 흙과 직접 주고받으며 서로 보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이다. 판전의 공기가 너무 메말라 있을 때는 바닥 흙에서 올라오는 수분으로 습도를 높여주고, 장마 때처럼 공중 습도가 높으면 바닥 흙이 수분을 흡수하여 습도를 내려주는 자연 순환식 설계를 한 것이다. 흙바닥 그대로의 자연 상태는 과학적으로도 이유 있는 경판 보존 환경이다.
바닷물에 3년 담가두었다?
또 흔히 하는 이야기는 경판 만들 나무를 베어 바닷물에 3년을 담가두었다는 것이다. 썩고 벌레 먹는 것을 막고 재질이 견고해지도록 이런 조치를 했다고 한다. 과연 그랬을까? 바닷물의 염분농도는 3.5%에 불과하여 썩음을 막고 벌레가 덤비지 않게 하는 효과는 그렇게 크지 않다. 바다 속에 오래 두면 오히려 바다나무좀이나 천공충穿孔蟲 등 해양 생물의 피해를 받기 쉽다. 나무껍질에는 물이 들어갈 수 없는 수베린이라는 물질이 있어서 껍질 아래까지 바닷물이 들어가기도 어렵다. 실제로 남해 앞바다에다 산벚나무 통나무를 3년 동안 담가둔 후 바닷물이 들어간 깊이를 조사해보았더니 나무껍질 아래로는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바닷물에 3년 담갔다는 이야기는 일부러 시간을 정해두고 반드시 시행한 경판 제작의 필수 과정은 아니다. 경판 나무를 현장에서 켜지 않고 통나무 상태로 운반하는 경우가 있었다면, 뗏목으로 바다를 지날 때 자연스럽게 바닷물에 몇 년씩 담가지기는 했을 터이다.
그러나 팔만대장경판 새김에 쓰인 판자 자체는 소금물 삶기가 필수였다고 본다. 관련 문헌이나 과학적인 상식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서유구는 ≪임원경제지≫ 이운지怡雲志에 목판을 만드는 방법과 인쇄 후의 보관 방법과 관련하여나무를 켜서 판자를 만든 다음 소금물에 삶아내어 말리면 판이 뒤틀리지 않고 또 조각하기도 쉽다고 기록해 두었다. 옛 사람들도 목판을 만들면서 먼저 소금물에 삶아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소금물 처리라는 이 방식은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 벌레 먹고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 아니라 말리는 과정에 생기는 나무의 갈라짐, 틀어짐, 굽음 등의 여러 가지 변형을 예방하기 위해서이다. 나무 속에 있는 수분이 표면으로 이동하여 수증기가 되어 대기 중으로 날아가는 과정이 건조이다. 복잡한 세포 구조를 가진 나무는 속에서 겉으로 수분이 이동해 나오는 속도보다 표면에서 수증기가 되어 날아가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특히 경판 나무처럼 두꺼운 판자는 이런 경향이 더욱 심하다. 따라서 나무 표면은 안쪽보다 더 빨리 건조되면서 강하게 옥죄는 상태가 된다. 결국 나무 표면과 안쪽은 힘의 균형이 깨져 갈라지거나 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