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만대장경판의 수종분석과 보존현황(修多羅,97.2)
그림 1. 대장경판 산벚나무 현미경사진(왼쪽부터 힁단면, 방사단면, 접선단면)
그림 1. 대장경판 돌배나무 현미경사진(왼쪽부터 힁단면, 방사단면, 접선단면)
1. 머릿말
고려대장경판은 국가가 위기에 처하였을 때 전국민이 일치단결 하여 불심의 힘으로 외적을 물리치겠다는 일념으로 장장 16년의 대장정을 거쳐 이루어진 우리 민족의 위대한 유산이다.
이는 단순히 불교라는 어느 종교의 경전으로서의 값어치 뿐만 아니라 선조들의 집념과 끈질긴 투혼을 엿볼 수 있는 증거로서 우리 모두 옷깃을 여미게 한다. 대장경판은 나무로 만들어 졌으면서도 75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거의 완벽하게 보존될 수 있었든 조상의 슬기에 다시 한번 감탄하면서 경판의 재질은 무엇이며 어디서 어떻게 그 많은 나무를 조달하였는지는 신비로움을 알아내는 데는 오늘의 발달된 과학적인 지식으로도 불가사의이다.
필자는 오랫동안 나무의 재질을 공부하면서 92년부터 단일 목조유물로서는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팔만대장경의 경판재질에 관한 조사를 할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서지학적인 측면에서 經書의 해석과 초조대장경과의 관련성을 검토하는 연구 등은 비교적 상세하게 이루어져 많은 논문이 발표되고 있으나 대장경을 이루고 있는 재질 자체에 대한 연구는 한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다. 경판은 모두 목판이므로 기본적으로는 수종분석이 필수적이고 보존현황을 비롯하여 차후의 완벽한 보존을 하기 위한 목재과학적인 입장에서의 다각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2. 경판에 사용한 나무
경판에 사용한 나무는 우선은 재질이 균일하고 미세하여 글자 한 획 한 획이 깨끗하게 파져야 하며 너무 단단하여 글자를 새기기가 여려워서도 안된다. 그렇다고 너무 연한 나무는 印經을 할 때 빗침부분이 떨어져 나가버리므로 적당치 않다. 이런 조건에 맞는 나무는 그렇게 많지 않으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소나무, 잣나무, 젓나무 등의 침엽수는 세포크기가 크고 (머리카락의 1/2정도) 春秋材의 세포차이가 너무 뚜렷하여 부적합하다. 또 밤나무, 참나무, 느티나무, 물푸레나무 등은 물관의 직경이 무려 0.3mm나 되므로 쓸 수 없다. 그렇다면 적당히 단단하고 세포의 크기가 고르며 조각하기가 쉬운 나무는 대단히 한정되며 그나마 경판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직경이 크게 자랄 수 있는 나무라야 하는데 이런 나무는 10여종에 불과하다. 경판의 수종분석방법은 나무의 세포형태나 배열형식을 광학현미경과 전자현미경을 이용하여 목재조직학적인 기법으로 분류하고, 그 특징을 이미 조사한 세포형태특징과 비교검토하여 해당수종을 확정하는 것이다. 대장경판 제조에 사용된 원목의 수종은 대부분 산벚나무류로서 전체 시편수 대비 62%에 해당하고 경판부위에서만 보더라도 64%에 달하며 마구리의 구성수종에서도 56%에 해당한다. 또한 돌배나무류는 전체 조사시편수 대비 약 13%이고 채취부위별로는 경판부에서도 14%나 점유하고 있다. 기타 자작나무류 8%, 층층나무류 6%, 단풍나무류와 후박나무류가 각각 3%, 버드나무가 1점 검출되었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경판에는 사용하지 않았고 마구리 혹은 부위불명 재료에서 각각 1-2점이 검출되고 있다.
이상에서 본 것처럼 경판의 수종은 산벚나무류와 돌배나무류가 전체 검출된 조사수종의 75%로서 대부분을 차지하며 지금까지 자작나무로 알려진 수종은 8%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한가지 간과해서 안될 사실은 8만여 장의 대장경판중에 불과 250여장을 조사한 결과를 가지고 대장경경판 전체수종을 논의 할 수 있느냐는 문제이다. 물론 필자도 표본크기가 모자라는 점은 인정하나 조사대상이 국보라는 특수성과 한정된 조사기간이라 어쩔 수 없었고 조사경판의 선정에 있어서는 가능한 대표성을 나타낼 수 있게 충분히 배려하였다. 조사표본수를 늘리면 앞 표에서 제시한 각 수종의 비율은 다소 변할 수 있겠으나 대체적인 경향을 알기에는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산벚나무류, 돌배나무류, 단풍나무류, 층층나무류, 버드나무류 등은 북쪽의 추운 지방을 제외하고 우리나라의 어디에서나 비교적 흔히 자라는 수종이고 자작나무류는 추운 북쪽지방이나 남쪽에는 지리산 중복이상의 비교적 한랭한 기후를 선호한다. 반면에 후박나무류는 그 분포지역이 남해안의 난대림으로 경판의 판각지역을 유추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면 주요 경판수종인 산벚나무류, 돌배나무류, 자작나무류의 특징을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2.1. 산벚나무류 - Prunus sp.
산벚나무는 장미과라는 대단히 많은 나무종류가 포함된 집단에 속하는 나무이다. 좀더 좁혀 본다면 벚나무, 왕벚나무, 산벚나무, 올벚나무, 개벚나무. 섬벚나무, 꽃벚나무등 식물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사람들은 좀처럼 구별할 수 없는 비슷비슷한 벚나무류중의 한 종류이다.
이른 봄 古家의 뜰 안이나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흔히 매화, 산수유 등의 화사한 꽃을 보고 이제 막 봄의 시작을 느낄 즈음 다른 나무들은 아직 새잎의 푸르름이 시작도 하기 전에 화사한 분홍빛 꽃을 지천으로 달고있는 나무이다. 이 꽃이 필 무렵이면 멀리서도 쉽게 산벚나무를 구별할 수 있어서 몽고군에 유린당한 육지에서 몰래 몰래 한 나무씩 베어오기에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산벚나무는 꽃의 아름다움 만큼 우량한 재질을 가진 나무이다. 높은 산꼭대기가 아니면 전국의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고 섬지방에도 잘 자라고 있다. 높이 20m, 직경이 거의 1m까지도 자라는 나무이나 대체로 높이 10여m, 직경 5-60cm에 달하는 큰 나무이다.
心邊材의 구분이 확실하고 심재는 짙은 적갈색이며 조직이 치밀하고 곱다. 기건비중 0.62정도이고 잘 썩지 않으며 가공이 쉽다. 용도는 조각재, 칠기심재 등이며 목판인쇄의 재료로서는 최우량재이다.
2.2. 돌배나무류 - Pyrus sp.
우리 조상들이 즐겨 먹든 과일나무의 한 종류로서 돌배나무는 잘 알려져 있다. 전국의 산 속에 흔히 자라든 돌배나무는 기껏 작은 주먹만한 앙증맞은 크기로서 재삿상의 棗栗枾梨의 마지막 과일이 될 만큼 사랑을 받아왔다. 배의 식용역사는 굉장히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데 약 4천년전의 일산신도시 선사시대유적에서 발견되기 도하며 약 2천년전의 의창다호리 가야고분에서 밤, 천선과와 함께 돌배가 출토된바 있어서 무척 오래 전부터 애용해온 것으로 생각된다. 배나무는 감나무, 밤나무와 마찬가지로 과일나무이면서 목재로도 좋은 재질을 갖고 있어서 우리 선조들이 귀중히 여겨온 것 같다.
직경 60cm, 높이 10m 까지 잘랄수있으며 옅은 붉은 빛이 도는 목재이고 조직이 매우 치밀하고 균일하다. 기건비중 0.73으로 약간 무거우면서 강도가 강하고 단단한 반면 가공은 비교적 용이하다. 가구재, 기구재, 조각재등으로 사용되었으며 1915년 전체적인 대장경 印經작업을 하면서 누락된 경판18매를 발견하고 다시 새겨넣을 때 서울근교의 배나무를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2.3. 자작나무류 - Betula sp.
대장경판은 지금까지 자작나무로 알려져왔다. 그러나 필자의 조사결과로는 앞에서 본 것처럼 경판의 수종은 대부분이 산벚나무류와 돌배나무류이고 자작나무류는 8%에 불과하였다. 자작나무로 알려진 나무는 식물학적으로 자작나무속에 속하는 나무의 총칭으로서 흔히 알고있는 수피가 새하얀 자작나무(Betula platyphylla var. japonica)와 거제수나무(Betula costata) 및 사스래나무(Betula ermani)를 비롯하여 박달나무(Betula schmidtii), 물박달나무(Betula davurica)도 여기에 해당된다. 자작나무와 거제수나무, 사스레나무는 형태가 비슷하여 거의 구분할 수 없으므로 편의상 자작나무류로 구분하였으나 분포지역은 자작나무가 북한의 추운 고산지방에서 시베리아까지 분포하는 대표적인 寒帶수종인데 비하여 거제수나무와 사스레나무는 지리산을 비롯한 남부지방의 고산에 분포하는 수종이다. 대장경판의 재료가 자작나무인지 거제수나무 혹은 사스래나무인지는 중요한 의미가 있으나 현재의 지식으로서는 양자를 구분하는 방법은 없다.
의사 지바고의 영화에서 광활한 시베리아의 수해를 이루는 새하얀 껍질을 가진 나무가 자작나무(白樺)이다. 너와집의 재료이고 이른 봄 줄기에 구멍을 뚫어 위로 올라가는 물을 인간에게 뺏기고도 의연히 서있어서 흰 수피 때문에 다가오는 처량함과 아울러 생명의 경외마저 느끼기도 한다. 새하얀 수피가 얇게 벗겨지므로 종이가 일반화 되기 전에는 종이의 대용으로 쓰였고 천마총의 天馬圖도 이것으로 그렸다. 수피에 기름 끼가 많아 태우면 짜작짜작 소리가 나는데서 이름이 유래되었고 흔히 말하는 화촉(華燭)이란 말도 이 나무와 관련이 있다.
3. 자작나무와 대장경판
팔만대장경판을 만든 나무가 대부분 산벚나무와 돌배나무인 것은 앞에서 알아보았다. 그러나 지금의 해인사 수다라장 앞에는 경판을 자작나무로 만들어 졌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크게 붙어 있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로서 팔만대장경판의 재질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단순히 흥미의 차원이 아니라 이 위대한 민족의 유산이 갖고 있는 문화적, 역사적 의미를 해석하고 나아가서는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는 移運 경로를 비롯한 신비의 열쇠를 갖고 있다고 본다. 그러면 왜 지금까지 경판이 자작나무로 만들어 졌다는 설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몇 가지 측면에서 검토해 보고자 한다.
우선 기록에서 보면 고려사, 이조실록을 비롯하여 李圭報의 東國李相國輯, 徐有?의 林園十六志등 대장경에 관한 어느 문헌에도 명확한 材種기록을 찾을 수 없다. 따라서 경판의 재질이 자작나무라는 것은 근세에 들면서 대장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주장이 그대로 사실처럼 받아들여진 것으로 생각된다.
우선 구체적인 몇가지 예를 문헌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① 海印三味씨는 내本山자랑이라는 잡지의 {海印寺의 藏經閣과 經板}이라는 글에서
---經板의 全面에 칠을 하고 用材는 白樺(자장나무)인데 제주도, 완도, 거제도 등에 産出한 것이라 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② 無能巨士씨는 {李朝佛敎史}라는 글에서
---用材는 樟木(조선에서는 厚朴이라 칭함, 제주도, 완도, 거제도, 鬱陵島에 産함)인데---라 하였다.
③ 한편 萬海 한용운은 {海印寺巡禮記}라는 수필에서
---體裁로 말하면 白樺(자작나무 혹은 거재나무)의 質인데---라고 하였다.
④ 기타 李 ?永씨는 {高麗大藏經, 그 歷史와 意義}라는 글에서
---목재는 제주도, 완도 및 거제도산인 자작나무를 ?는 데 雕造가 시작되기까지는 나무를 오래도록 海水에 저려 부패를 방지하는 조치를 취하고 그것을 다시 충분히 말린 후에야 판목을 만들었고 雕造가 시작되었다---고 하였으며
⑤ 趙 明基씨는 {國寶高麗大藏經의 價値}라는 글에서
---用材는 제주도, 완도, 거제도, 울릉도 등지에서 산출하는 厚朴(樺, 자작나무 혹은 거재나무라고도 함)이다. 강화도 本司에는 적당한 목재가 없기 때문에 영남지방의 남해 거제도 등에서 생산하는 원목을 벌체하여 천리 길을 운반하여다가 수년간 해수에 담그고 또 鹽水에 蒸하고 2.3년씩 건조하여 이것을 판자로 제재한 다음에 筆寫한 경문을 조각한 뒤 옻칠을 하여 영구히 부식함이 없도록 제작한 것이다---라고 하였고
⑥ 徐首生씨는 {伽倻山 海印寺 八萬大藏經 硏究}에서
---용재는 白樺인데 자작나무라고도 한다. 일명 거제도나무라고도 한다. 이 나무는 제주도, 완도, 거제도, 울릉도 등지에서 많이 생산된다. 이 나무를 벌채하여 3년동안 바닷물에 담궜다가 꺼내어 짝을 쳐서 다시 소금물에 삶아서 그늘에 말린 뒤에 대패질을 하고 經文을 毛筆로 써서 판에 새긴 것이 이 경판이다. 그리고 뒤틀리지 않도록 두 끝에 각목으로 마구리를 붙이고 옻칠을 가볍게 하고 네귀에 銅製로 장식하여 成板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상의 몇 분의 글을 인용해 보았으나 해인사 대장경판의 수종을 기록한 어느 논문에서도 과학적인 조사를 바탕으로 하였거나 수종명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하였다. 누가 제일 먼저 대장경판의 재질을 표기한 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한자로 白樺로 기록하고 자작나무 혹은 거재나무 및 거제도나무(정확한 명칭은 去災樹나무임)로 기록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趙 明基씨등은 厚朴이라고 표기하고 자작나무와 같은 나무로 잘못 기록하고 있다. 無能巨士는 같은 類의 誤記로 생각되는데 녹나무를 말하는 樟木으로 기록하고 厚朴이라고 주석까지 붙여서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분포지역의 기록도 자작나무가 남해안에 분포한다고 단정하고 있으나 식물학적인 지식으로는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왜 명확한 근거도 없이 오늘날 대장경판은 자작나무 혹은 거제수나무로 알려졌으며 심지어는 후박나무라고 까지 말하고 있는가?. 앞에서 본 것처럼 대장경판의 극히 일부는 자작나무류와 후박나무류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산벚나무류와 돌배나무인 대장경판이 왜 자작나무로 알려져 왔는 지는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추정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는 필자가 寡聞하여 아직까지 찾지 못하였으나 경판을 제작한 후 전해 지지 않은 문헌의 어디엔가 樺木이라는 기록이 있었거나 구전되었을 가능성이다. 즉 "樺"의 표기의 미묘성인데 先人들은 자작나무와 벚나무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모두 樺木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에 관하여는 任慶彬이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바, 『林園十六志에서 樺에 대한 인용은 자작나무에 대한 것과 벚나무에 대한 것을 함께 수록하고 있다. 本草綱目<李 時珍>의 인용을 보면 樺는 山桃와 비슷하여 색은 황색이고 분홍의 작은 반점이 있다. 수피는 두껍고 부드러우며 신발의 뒤창에 붙이고 때로는 칼집에 이것을 쓴다. 또 말안장이나 활을 싸기도 하고 껍질은 蜜蠟을 감아서 초를 만들어 불을 붙이기도 한다.
이 記述에서 꽃의 색깔이나 수피의 용도로는 벚나무를 말하는 것 같고 뒷부분의 말안장에 쓴다거나 밀납으로 이용한다는 내용은 자작나무를 가리키고 있어서 서로의 구별이 불명하다. 또 海東新書<徐 浩修>의 種藝항목에는 樺는 깊은 산중에 나는데 이것을 뜰에 옮겨 심을 수 있고 수고가 높게 된다. 3월에 엷은 분홍색의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데 열매는 처음에는 푸르나 뒤에는 분홍색으로 된다. 앵두와 거의 같은 시기에 익는데 일본사람들은 이 꽃을 무척 소중하게 여긴다고 하여 樺木을 벚나무로 본 경우이다. 즉 자작나무와 벚나무를 동일한 漢字인 樺로 표기하고 混用하여 온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벚나무와 자작나무의 특성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은 樺木을 벚나무류로 알고 있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자작나무로 알고 있다. 따라서 대장경판은 대부분 樺木을 사용하였다는 기록이나 口傳을 자작나무로 알지 않았나 생각해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巨濟島産나무가 거제수나무로 변형된 과정에서 추정해 볼 수 있다. 巨濟島에는 옛부터 우량재가 대량으로 분포한 것으로 추정되며 시대적으로 맞지 않아 전설로만 치부하고 있는 李居仁에 관한 기록에서도 伽倻山海印寺大藏經印出文에『羅王招致工匠亦運?板於巨濟島成列不止時入指云杞梓皆稱巨濟木至今仍名馬入我』라 하여 거제도에서 생산된 목재를 사용한 기록이 있다. 즉 경판을 판각하는 데는 옛부터 거제도에 나는 나무를 많이 이용하였으며 대장경판을 각판할 때도 몽고군에 유린된 육지보다는 수집과 운반이 손쉬운 거제도, 남해도, 완도, 진도, 멀리는 제주도까지 섬지방에서 많은 경판재를 조달하였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 반드시 춘양에서 나지 않더라도 재질이 우량한 소나무는 모두 春陽木이라고 부르듯이 남해지방에서 조달한 경판용재의 나무를 흔히 거제목이라고 통칭되었다고 본다.
즉 巨濟島産나무는 흔히 巨濟木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다시 巨濟樹로 변형되고, 공교롭게도 지리산, 가야산등 남부지방의 고산지대에는 去災樹라 불리는 나무가 본래부터 자라고 있었으므로 거제도에 나는 나무 전부에 대한 일반명으로서의 巨濟樹를 남부지방의 고산에 분포하는 고유수종인 去災樹로 잘못 알려지게 되지 않았나 추정된다. 그런데 去災樹나무는 고산지대에 분포하므로 일반인들이 잘 모르고 또 흰 수피가 종이처럼 잘 벗겨지는 모양이 흔히 알려져 있는 자작나무와 거의 비슷하여 구분이 어렵다. 한자로도 거제수나무와 자작나무는 같은 樺字표기를 하므로 자작나무로 알려지게 된 것 같다.
4. 경판의 현황과 보존상태
750여년의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도 오늘날 거의 완벽한 형태로 대장경판이 보존될 수 있었든 신비는 무엇인가?. 우선은 抑佛崇儒라는 이조의 사회환경에서 오직 불심하나만으로 경판을 사수하여온 스님들과 불자들의 공로를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다음은 나무라는 재질의 특징을 잘 살려서 알맞은 환경에 보존토록 한 조상의 슬기가 여기에 어울러져 오늘의 위대한 민족의 유산으로 남아있을 수 있었다.
4.1.경판의 치수와 무게
길이는 양쪽의 마구리를 포함하여 68cm, 70cm, 73cm, 75cm, 78cm등이나 68cm인 경판이 조사판수에 대하여 약 33%, 78cm가 54%정도이고 기타는 수%씩에 불과하다. 경판의 폭은 평균 24cm로서 占頌경판의 19cm인 경우도 있으나 다른 경판은 모두 23.4-24.8cm의 범위에 있다. 경판의 두께는 信華手經이나 扶毗奈耶破僧事경판처럼 2cm를 약간 넘은 경판도 있으나 대부분은 2.5-3cm전후이며 평균 2.8cm정도이다.
경판중량은 경판에 따라 차이가 많고 최소 達9卷 37,38張의 2312g에서 최고 背舍利弗呵毗曇論 第9卷 19,20張의 4444g까지 거의 2배에 달하는 중량의 차이가 있다. 68cm 및 70cm경판의 경우는 약 2600-3300g, 78cm경판의 경우는 약 3200-3800g의 범위에 있다. 이는 길이와 두께의 차이도 영향이 있겠으나 사용재료의 수종에 따른 비중의 차이 때문으로 생각한다.
4.2. 경판의 보존상태
전체적으로 경판의 보존상태는 과연 750여년이 지난 목판인지를 의심이 갈 만큼 잘 보존되어있다. 경판의 刻字部를 제외한 가장자리에는 옻칠이 된 경판이 상당수 있었고 양쪽에는 마구리를 끼워 운반이나 보관중 각자부가 맞닿는 것을 방지하고 통풍을 원활하게 하는 등의 역할이외에 경판이 휘는 것을 막아주는 조치를 슬기롭게 하고 있다. 알려진 바와 같이 경판은 근세까지도 수시로 반출하여 印經을 하였으며 이때 전분질의 식물성 풀과 먹물을 혼합하여 사용한 후 소금물로 닦아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이 엄밀하지 않아 덜 건조된 상태로 經板架에 다시 넣었거나 먹물을 충분히 제거하지 않아 먹딱지가 두껍게 붙어있는 등 제작 후 보관과정에도 문제는 있었든 것으로 생각된다.
경판의 결함은 腐朽, 굽음, 할열, 충해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항목별 상태는 다음과 같다.
4.2.1. 경판의 부후
경판의 부후는 쉽게 표현하여 썩는다는 말로서 만약에 부후가 진행된다면 이는 경판보존에 치명적인 문제이다. 목재가 부후하기 위하여는 擔子菌에 속하는 木材腐朽菌이 생육해야 가능한데 이는 함수율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함수율이 20-30%이상일 때만 활동한다. 현재의 경판의 함수율은 필자의 조사로는 16%전후로서 부후균이 자랄 수 없는 환경이며 경판은 계절에 따른 함수율 변동이 거의 없다. 이는 목재의 주성분인 셀룰로오스에 붙어있는 물분자수가 750여년 이라는 장기간 동안 거의 안정이 되어 설령 장마철에 주위의 상대습도가 올라가더라도 목재자체의 함수율은 거의 변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장마철에 경판의 표면에 일시적으로 곰팡이가 생기는 것은 인경때 사용한 식물성 풀의 전분 때문이고 닦아낸다거나 가을철이 되어 주위가 건조하면 자연적으로 없어진다.
법보전 동편 시렁에 보관되어 있는 폐판과 일부 경판에서 과거에 부후균에 의한 부후가 진행된 흔적은 찾을 수 있었으나 현재에도 부후가 진행되는 것은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4.2.2. 경판의 굽음과 할열 및 충해
일부 경판에서 너비굽음(平面橫굽음, cupping), 비틀림(twisting), 길이굽음(平面縱굽음, bowing), 할렬(割裂, check) 등의 결함이 발생한 것을 관찰할 수 있다.
너비굽음은 총 조사경판의 26%에 해당하는 268장에서 관찰되었고 이중 33장은 그 정도가 심하였으며 경판에 따라 차이가 크다. 비틀림이 관찰되는 경판은 151장으로 조사경판수 對比 15% 정도이고, 이중 비틀림의 정도가 심한 경판은 14장으로서 1%에 해당했다. 이에 비하여 길이굽음은 조사경판수 對比 3%인 30장에서 관찰되며 너비굽음이나 비틀림에 비하여 발생한 경판수가 훨씬 적었다.
한편 경판이 갈라진 할열은 육안으로 틈을 볼 수 있는 열린할렬과 갈라졌든 틈이 다시 닫혀버린 닫힌 할렬로 구분할 수 있었다. 할렬이 한 개라도 분포하는 경판개수는 열린 할렬의 경우 196 장으로 전체조사경판의 19%에 해당한다. 닫힌 할렬이 관찰되는 경판은 21장으로 총조사 경판수 對比 2%에 불과하였다. 이미 생겨있는 할렬의 끝부분에 가로로 짧은 칼자국을 넣어 더 이상 할열이 확대되지 않도록 한 8장의 경판을 관찰할 수 있었는데 이는 대장경판의 보존에 얼마만큼 정성을 들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증거이다.
경판표면에서 관찰되는 충해로 추정되는 직경 1∼2㎜인 벌레구멍은 전체 조사경판수의 약 2%에 해당하는 17장에서 관찰되었다.
경판의 굽음과 할열 및 충해등도 일부 경판에 불과하며 현재 이들 결함이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
5. 경판에 사용된 목재의 양
경판에 사용한 목재의 양은 크기별 전체 경판수에 대한 점유비율을 개략적으로 환산한 總材積과 마구리에 사용한 목재의 양을 합하면 구할 수 있다. 추정한 경판의 재적은 약 370m3, 양마구리 재적이 약 80m3로서 경판과 마구리에 사용한 목재의 총량은 약 450m3에 달한다. 이를 무게로 환산하면 비중을 0.6-0.7로 보아 약 300톤 정도인데 4톤 트럭에 싣는 다면 7-80여대에 해당하는 방대한 양이다.
그러면 450m3에 달하는 경판재와 마구리재를 얻기 위하여 어느 정도의 원목을 벌채하였으며 운반하는데는 얼마의 인원이 동원되었는지 추정해보자.
우선 450m3의 목재를 가공하는 데는 당시의 조악한 기술로 볼 때 원목에서 경판재를 만드는 調製收率은 적게는 원목의 10수%, 많게도 40-50%를 넘을 수는 없다. 따라서 원목은 적어도 1000m3이상이 필요하였다고 본다.
경판길이가 64cm, 74cm인 것이 대부분이므로 이를 기준으로 본다면 통나무의 길이는 적어도 90cm는 되었을 것이다. 또 통나무의 직경은 경판폭이 24cm이므로 적어도 40cm이상이라야 한다. 한편 산벚나무와 돌배나무의 枝下高는 약 1-2m정도이므로 직경 40cm의 경우 통나무 한 토막에서 粗經板은 2장 채취 가능하고 한 나무 벌채에서 약 1.5개의 통나무 토막이 생산 가능하다. 물론 실제로는 40cm이상의 대경목도 다수 사용되었을 것이나 운반 및 취급의 편의성을 고려한다면 사용 통나무 개수는 10,000-15,000본 정도로 추정되고 통나무를 선정 벌채하여 각판 장소까지 운반하는 데만도 동원된 연인원은 10만명 전후가 아닌가 생각된다.
6. 맺음말
이상 필자는 대장경판의 보존을 위한 과학적인 조사의 일환으로 수행한 주요결과를 정리해 보았다.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전체 81,340여장의 경판에서 수종분석에 250여장, 보존현황조사에 1000여장을 조사한 내용이므로 이 결과가 대장경판 전부를 대표한다고는 보기 어렵고 일부내용은 필자의 주관적인 추정임을 밝혀둔다. 따라서 이와 같은 조사는 앞으로도 계속되어 필자의 조사결과가 수정보완되어 이 위대한 민족의 유산을 자손만대에 물려 줄 수 있는 종합대책이 하루 빨리 완벽하게 수립되기를 바란다.